평균을 따르는 습관이 디자이너를 약하게 만드는 이유
“이런 경우 보통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질문은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힌 순간에만 나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이너가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더 자주 등장한다. 피그마 파일을 어떻게 백업하는지, 라이브러리를 어디까지 나누는지, 컴포넌트 네이밍 규칙을 어느 정도로 가져가는지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기술적으로 복잡하지도 않고, 팀마다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공식 문서나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기본적인 선택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는 자신의 판단으로 정해보기 전에, 오픈채팅방에 먼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의 목적은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데 있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해서 정한 방식이 아니라 다수가 선택한 방식에 나를 얹는 데 더 가깝다. 판단의 출발점을 나에게서 떼어내 평균으로 옮기려는 시도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중에 이 선택이 문제가 됐을 때 혼자 결정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질문은 조언을 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UXUI 디자이너라는 직무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사용자의 실제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어떤 설계도 가설에 불과하고, 그 가설이 맞았는지는 출시 이후에야 드러난다. 그래서 이 일은 늘 시간과 비용을 먼저 쓰고, 결과를 보고 다시 고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완벽한 답을 확보한 다음에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충분히 판단했다고 생각하고 일단 만들어봐야 하고, 틀리면 다시 고쳐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는 직무다.
그런데 이런 직무의 특성과는 다르게, 많은 질문들은 마치 어딘가에 이미 정답 패턴이 존재하는 것처럼 던져진다. 백업 방식 하나, 파일 구조 하나에도 “보통은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말이 붙는다. 심지어 공식 가이드가 명확히 존재하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문서를 읽고 판단하기보다는, 커뮤니티에 질문을 던져 누군가의 선택을 그대로 가져오려 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점점 토론의 장이 아니라, 검색창처럼 소비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단순히 편하다는 수준을 넘는다. 판단을 외부로 넘기는 순간, 생각의 책임도 함께 외주화된다. 필요한 정보를 검색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음에도, 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타인의 결정에 맡겨버린다. 게다가 그 판단을 대신 내려달라는 요청은, 누군가의 시간이라는 중요한 자원까지 함께 소모하게 만든다. 질문 하나는 가볍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꺼내 쓰고 있다.
이런 질문이 반복될수록 디자이너의 사고는 서서히 평균값에 가까워진다. 이 팀의 맥락이나 이 제품의 조건, 지금 시점의 제약보다 “대부분 이렇게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평균적인 선택은 늘 안전하지 않다. 다른 팀에서는 문제 없던 방식이 지금 팀에서는 병목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서비스에서는 무난했던 결정이 지금 사용자에게는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평균은 참고할 수는 있어도, 결정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선택이 쌓일수록 디자이너가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실수를 피하려는 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판단 자체를 미루는 습관으로 바뀐다.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결정을 내가 했다는 흔적은 남기고 싶지 않은 상태다. 이 습관이 반복되면, 디자이너 역할의 중심은 조금씩 비어가기 시작한다.
AI가 디자인 작업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게 되는 지금의 흐름에서는 이 문제가 더 또렷해진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화면을 하나하나 그리는 사람이기보다는, AI에게 어떤 인풋을 주고 어디까지 맡길지를 정하는 역할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손으로 하는 작업은 줄어들고, 대신 판단과 책임의 비중은 훨씬 커진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직접 책임질지를 정하는 일이 직무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여전히 UXUI를 직접 설계하고 수정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작업과 반복적인 노동이 AI로 넘어간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 시점이 오면,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물을 대상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미 판단의 주체에서 밀려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태도의 차이라기보다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판단을 외부에 맡긴 채 쌓아온 커리어는, 정작 판단이 핵심이 되는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평균을 따르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편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자이너를 가장 교체하기 쉬운 위치로 밀어넣는다.
한편 업계에서는 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UXUI 디자이너의 연봉이 낮다, 디자인 직무가 쉽게 소비된다,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말들이다. 구조적인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디자이너 스스로의 태도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자신의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의하는지, 어떤 판단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지, 내 역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따라 대우는 달라진다.
아주 기본적인 판단, 심지어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오는 정보까지 계속 커뮤니티에 기대고 있는 상태에서, 더 큰 결정을 요구받는 순간이 왔을 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이건 제 판단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평균 뒤에 숨지 않고 설 수 있을까.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늘 정답을 찾고 결정을 미루는 사람에게 더 큰 권한이나 더 나은 조건을 맡길 이유는 많지 않다.
결국 연봉이나 처우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판단과 연결된다. 지금의 디자인 환경이 불만족스럽다면, 그걸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건 불만의 표현이 아니라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남들이 어떻게 하느냐를 묻는 질문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균이나 존재하지 않는 정답만을 좇으면서, 동시에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하는 건 모순에 가깝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는 순간, 그만한 보상을 요구할 명분도 함께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