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럽지만 내색하지 않을게
주말도 스케줄이 빡빡합니다
토요일 아침
주말에도 보통 6시면 일어난다.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내 책상에 노트북을 펼쳐 놓으려는데 첫째 딸아이의 수학 문제집이 먼저 자리 잡고 있다. 어젯밤 10시 영어학원을 마치고 집에 같이 오면서도 내일 오전 수학 학원 갈 걱정? 푸념?을 한다. 숙제를 자기 전까지 다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씻고 나서는 꾸역꾸역 자정까지 숙제를 하고 잠이 들었다. 자기 전에 아침 7시에 깨워달라는 이야길 하는 걸 보니 아침에 남은 숙제를 하고 오전 10시 학원에 등원할 생각인가 보다.
다행히 오늘도 6시 언저리에 일어나서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다 잠깐만 문제집을 들여다봤다.
너무 어렵네.
집에서 수학은 와이프가 도와주고 나는 영어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영어 담당이라 수학 문제집을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데 이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어야 모르면 사전 찾아봐가면서 하면 되는데 수학은 물어볼 데도 없고 이젠 봐도 내가 대답해줄 수준을 넘어버렸다.
딸은 친구들에 비해 수학, 영어를 늦게 시작했다.
학원을 빨리 보낼 계획도 아니었고 어릴 땐 좀 놀아야지라는 생각에 학원 보내는 걸 늦췄다. 그런데 큰딸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까지 발레를 하다가 공부를 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처음엔 그냥 재미와 건강을 위해 시작했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전공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왔었다. 뒤늦게 재미가 붙어 열심히 했지만 그 문턱 앞에서 전공까지 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발레를 그만두게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 비하면 무척 늦은 시점인 6학년 2학기부터 수학, 영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소위 이 동네에서 대부분 거쳐간다는 학원 시스템에 뛰어들었다. 수학은 선행은커녕 같은 학년을 따라가는 것부터 시작한 게 다행이고 영어는 본인보다 1학년 낮은 반에 들어가야 했다. 이미 조기에 시작한 친한 친구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런 점에서 자존감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다행히 2년이 지난 지금은 수학은 약간의 선행과 영어는 같은 학년과 수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더 다행인 건 발레 이야길 꺼내지 않는다.
참 열심히 한다. 해야 할 숙제는 꼬박꼬박 잘해가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만 한편으론 성취감에 뿌듯해할 때도 있다. 저렇게 하는데 차마 '적당히 해~', '학원 줄일까?'란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야 친구들하고 조금 비슷해졌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지금 하는 공부가,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자기만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쌓고 있는 지식으로 평생을 먹고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만족할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같이 고생하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면서, 할만하다는 생각만 들면 좋겠다. 비교는 적당히만 하고 지치면 적당히 쉬기도 하면서 길게 길게 보고 끝까지 가기만 하면 좋으련만.
적당히 하라는 말이나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몇 년간은 주말도 계속 바쁠 텐데, 좋아하는 쇠고기 야채죽이나 아침에 끓여줘야지.
※대문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