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 수필을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무려 767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이라 양에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하루키 책이니 금방 읽겠지 했지만 3부에 걸친 내용을 완독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많은 여운이 남았다.
1.
소설 내용은 단순하다.
주인공인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학년 아래인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그 소녀는 그에게 그 도시를 알려준다. 그곳에서 나는 꿈을 읽어주는 사람이고 소녀는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 소녀의 실체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있고 그곳에서 자신을 만나려면 간절히 원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 소녀와 그 소녀를 그리워하다 우연히 도시로 들어간 나, 결국 그 도시를 빠져나와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 이야기다.
2.
이 소설에 주인공들은 비밀이 많다.
그리고 그 비밀을 풀어나가는 건 바로 대화를 통해서다. 등장인물이 많지는 않지만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전 도서관장(유령이다), 카페 주인, 그리고 그 도시로 떠나는 소년 등 주요 인물과의 대화를 읽어나가다 보면 비밀이 조금씩 풀려나간다. 친밀도가 높지 않으면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색하지만 조금씩 공유하게 된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나의 실체, 그리고 그림자 이야기를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3.
난해하다.
하루키 소설 특유의 메타포가 많이 들어 있다. 나와 그림자, 또 다른 도시와 현실세계 등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양자역학 같은 느낌도 나고 현실 세계 속에서의 자아 그리고 사회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 나와 카페 주인인 그녀와의 대화 부분이다. 나 역시 도시와 관련된 비밀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녀 역시 털어놓기 어려운 비밀을 공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결국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4.
책 마지막에 있는 작가후기부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1980년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중편을 쓴 뒤 발간하지 않은 미완성인 상태로 있다가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1부를 완성하고 반년 정도 원고를 묵혀두었다가 2,3부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본인은 솔직하게 완성 후 마음이 편했다고 밝혔다. 1부에 현실과 그 도시에서의 일이 교차되면서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는데,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도 그랬지만 한 작품 안에 여러 스토리를 넣는 게 작가들은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