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검증도 실전이다
운영 중인 플랫폼 서비스 상담톡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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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담당자님.
갑작스러운 협업 문의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현재 OOO 대학교 재학생으로, 펫 산업 분야에서 신규 서비스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XXX입니다. 또한 오는 3월부터 XXX 회사의 XXX 팀에서 근무 예정으로, 플랫폼 기반 서비스와 현업 PoC 사례들을 함께 접하며 학습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현재 저는 반려견 보호자의 오프라인 활동(커뮤니티·산책·사회화)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기획 중이며,아직 프로덕트 개발이나 사업화를 시작한 단계는 아닙니다. 기존에 산책 매칭 서비스를 운영하다 서비스 종료한 'XXX'의 XXX 대표님과 미팅을 통해 아이디어에 대한 조언을 받고 있으며, 여러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가설 중 실제로 검증할 가치가 있는 방향을 찾아야 되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살펴본 여러 펫 서비스 중, 귀사가 보유한 플랫폼 특성과 사용자 맥락이 제가 구상 중인 서비스와 가장 적합한 검증 환경이라고 느껴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향은
• 반려견 보호자 커뮤니티 또는 지역 기반 활동을 통해
• 향후 산책 맡기기·돌봄과 같은 니즈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를 MVP를 통해 검증해 보는 것입니다.
아직은 프로덕트도 없고 협업 구조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PoC가 가능하다면, 그에 맞춰 그때부터 최소한의 형태로 개발과 실험을 시작해 보고 싶은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번 연락은 구체적인 제휴나 개발 요청이 아니라, 이러한 가설 검증의 파트너로서 적합하다고 보시는지, 또 혹시 내부 관점에서 조언을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만약 가능하시다면 짧은 미팅이나 간단한 의견 교환 형태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하신 방식으로 가능 여부만 알려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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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실 Product를 만들기 전에 갖고 있는 컨셉을 운영 중인 서비스에서 PoC(Proof of Concept)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아쉽지만 PoC를 별도로 할만한 환경이 돼 있지 않아서 가능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현업 담당자에게 어려운 요청을 할 정도로 진심이 느껴져서 PoC 진행 대신에 Concept 관련 대면 미팅은 가능하다고 해서 만나게 되었다.
한 시간 대화를 통해 기본적인 컨셉을 이해했다.
1. 반려인을 대상으로 한 지역기반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상 중
2. 근거는 자체 시장조사한 결과 지역기반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게 없어 보였다
3. 해당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화 진행
이 3가지 컨셉중에 가장 맞닿아 있는 서비스가 지금 내가 운영 중인 서비스라 의견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난감했다.
PoC를 할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분께서 이야기 한 내용들이 대부분 이미 가설을 세우고 진행을 해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대부분 좋지 않아 중단했던 것이고, 대부분 플랫폼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사업 계획서에 기본적인 골격으로 진행하는 내용이다. '시장의 니즈 파악 → 제품 출시 후 고객의 열광적인 반응 → 이러한 트래픽을 바탕으로 수익화 진행'이라는 정석인데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시장의 니즈 파악'이라는 부분에서 나와는 다른 이견이 있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솔직히 이야길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있었던 가설과 결과를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왜 서비스가 지금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플랫폼의 기획부터 현재 운영까지 과거 이야길 했지만 만약 새롭게 플랫폼을 기획한다면 '시장의 니즈'에 대해 좀 더 충분히 검토해 보고 아래 두 가지를 특별히 더 고려 해 보겠다고 했다.
첫 번째, 고객 획득비용(CAC)는 고객 생애 가치(LTV) 보다 높다
두 번째, 시장 크기에 따라 기회와 성장의 속도가 좌우된다
저 두 가지를 말한 건 고객의 니즈를 바로 공략해서 잘 가는 서비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시장의 니즈보다는 나의 아이디어와 시장조사를 더 정확하고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Trial &Error 과정을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고객 획득비용(CAC)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처음부터 수익화(사실은 생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움직일 경우 플랫폼이 안착하기까지 시간을 벌기가 더욱더 힘들다.
절제해서 답변만 한다고 했는데도 실망이 큰 것 같았다.
문의 내용에 밝혔던 다른 동종 플랫폼 대표랑 이야기했는데 콘셉트를 긍정적으로 보시더니 막상 PoC를 하려 할 때 시점에는 해당 서비스가 갑자기 문을 닫는 걸 보았다고 했다. 이제 플랫폼 비즈니스는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걸까요? 결국 AI, 바이오, 로봇 같은 집테크가 답일까요?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 걸 하기에는 투자도 위축된 상황에 창업이라는 허들이 너무 큰 것 같아 많이 답답하네요.
나는 이 분께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실 제품을 만들어서 직접 런칭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가설 검증도 실전이다. 하기 전엔 안되는 이유가 100가지도 넘을 것이고 오늘 내가 한 이야기도 거기에 1~2개를 더 붙여 준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할 때 해야 할 이유는 3가지도 안될 수 있어서 PoC를 통해 거기에 돌을 하나 더 얹혀놓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몇개월, 아니 몇년후 이 분이 신제품을 만들지 그냥 프로젝트를 덮어버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있는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Neverthe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