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싸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팀을 옮긴 뒤에도
나는 그곳이 여전히 낯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같이 웃고, 같이 훈련했지만
코치 선생님께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친했다.
내가 따라잡고 싶었던 두 명의 선배,
그리고 한 명의 후배.
우리는 늘 함께였고
친구처럼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게 있었다.
나만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다이빙부를 창단했고,
나는 수영부가 있는 학교에 남았다.
같이 훈련했지만,
완전히 같은 팀은 아니었다.
그 미묘한 거리는
늘 존재했다.
그해,
그들은 중국 전지훈련을 떠나게 됐다.
학교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나만, 빠져 있었다.
나는 괜찮은 척 말했다.
“별로 도움 안 되는 훈련이래요.
관광이나 견학이 더 많다던데요.”
사실은
자비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괜히 짜증을 냈고,
괜찮은 척하며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서 놀다 오는 거라도 괜찮으니까, 다녀와.”
결국 나는
코치 선생님께 돈을 드리고
그들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북경.
처음 가본 중국이었다.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6년 뒤,
내가 이곳에서
올림픽을 뛰게 될 거라는 것을.
10일 동안의 전지훈련.
돌이켜보면
운동보다
낯선 풍경과 시간 속에 있었던 기억이 더 많다.
돌아온 뒤,
나는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분명히 느꼈다.
나는 아직 부족했다.
그래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하는 것.
선배가 50번 하면
나는 100번을 했다.
회전이 느리다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팔을 수백 번, 수천 번 휘둘렀다.
복근이 부족하면
끝난 뒤에도
혼자 남아 다시 반복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멈춰 있던 시간만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회전이 빨라졌고,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2학년 전국체전이 열렸다.
1년 전,
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선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증명해야 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어떻게든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했다.
나는
절실했다.
결과는
2위.
1위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그 선배였다.
사람들은
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분노했다.
나는
1위를 원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도 말씀하셨다.
“왜 1위를 못 했어.”
어머니는 늘 그랬다.
1위가 아니면
잘했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때는
그 말이 아팠다.
언제쯤
나는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1년 만에 2위까지 올라간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분노를 숨겼다.
그리고
더 강해지기로 했다.
국가대표가 될 때까지.
증명할 때까지.
며칠 뒤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코치 선생님의 태도가
미묘하게 차가워졌다.
같이 훈련하는 후배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처음에는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원래 이 팀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들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선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