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차가운 질문과 엄마의 환한 미소 사이
선배들이 떠난 고등부 다이빙대 위, 그곳엔 오직 나만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전광판 맨 위엔 내 이름이 새겨졌다. 주변에선 당연하다는 듯 나의 '전국체전 5관왕'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단 한 사람, 나의 스승은 여전히 서늘한 무채색이었다.
고소공포증을 짓누르며 10m 위에서 뒤로 세 바퀴 반을 성공시켰던 그 찬란한 순간에도, 그는 그저 당연한 숙제를 끝낸 학생을 보듯 덤덤했다. 그의 인정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밀어 넣던 그때, 불청객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오른쪽 어깨의 비명. 부상은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고1 때 터져버린 허리디스크도, 수시로 빠지던 왼쪽 어깨 탈골도 악으로 버텼다. '고통 없는 승리는 없다'는 문장을 부적처럼 삼키며 테이핑을 칭칭 감았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바위를 들어 올리는 듯 무거워졌지만, 나는 병원 대신 한의원의 침대에 누웠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내 생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나는 비명을 지르는 어깨를 달래며 매일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마침내 고등학교 생활의 마침표가 될 마지막 전국체전의 막이 올랐다. 5관왕. 그 다섯 개의 금메달만 손에 쥐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라는 문이 열릴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시작된 대회의 공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간절함이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아니면 한계에 다다른 어깨가 끝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일까. 결과는 처참했다. 주 종목이었던 개인전 1위 실패.
경기장 한복판에서 나는 무너졌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달려온 끝이 고작 이것인가 하는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펑펑 울었다. 수영장의 락스 냄새 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응원 오신 부모님과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대학도, 국가대표도,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신기루였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할 힘조차 앗아가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패배의 쓴맛을 삼키며 텅 빈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가벼운 러닝을 했다.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감촉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여기서 끝낼 수 있겠어?' 심장은 여전히 다이빙대의 그 아찔한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이빙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가보자고, 이름 없는 선수로 남더라도 끝까지 헤엄쳐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며칠 뒤, 코치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위로가 아닌 잔인한 확인이었다. "국가대표가 되지 않아도 괜찮겠니?" "…네, 괜찮습니다."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더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그럼 우리 팀 후배가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는데, 넌 그것도 정말 괜찮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코치님이 어릴 때부터 자식처럼 아끼며 가르치던 그 후배. 결국 나는 그의 시선 안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그저 후배의 성장을 위한 배경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제가 더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된 후배를 다시 이기면… 저한테도 언젠가 기회가 오겠죠."
그것은 항복 선언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마지막 다짐이었다.
현실의 벽은 높았고 나는 낮았다. 후배의 그림자가 되어도 좋으니 그저 물속에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겨울 훈련을 준비했다. 여느 때처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지친 어깨를 늘어뜨린 채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집안의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계셨다.
"엄마, 무슨 좋은 일 있어? 왜 그렇게 웃어?" "축하한다 아들아! 너, 국가대표 됐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진짜?"
멍해졌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벼랑 끝에서, 누군가 내 손을 잡아끌어올린 것 같았다. 무너진 어깨를 부여잡고, 차가운 물속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던 소년의 진심을 세상이 드디어 알아준 것일까. 찢긴 자존심과 고통의 시간을 껴안고 버텨온 나의 가슴에, 마침내 뜨거운 태극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기적은 겨울바람을 타고,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예상치 못한 기적을 만난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