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라서 멈추는 사람과 나침반을 들고뛰는 사람의 차이
9화의 마지막, 제가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 지금, 그 시절의 나를 복기해 보면 그것은 기적이 아닌 '필연'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밤을 지납니다. 저에게는 고소공포증, 부상, 그리고 "후배가 먼저 국대가 되어도 괜찮냐"던 코치님의 차가운 질문이 그 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어둠 속에서 "언젠가는 아침이 오겠지"라며 막연히 해가 뜨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다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삶을 보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무섭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이죠.
하지만 밤중에 있다고 해서 멈춰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내 북극성이 어딘지 알고 손에 '나침반' 하나만 쥐고 있다면, 밤이라도 발걸음을 옮겨 계속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읽은 『밤과 나침반』에서 "우리의 뇌는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저는 10m 위에서 뒤로 세 바퀴 반을 돌기 전, 머릿속으로 수천 번 그 동작을 리얼하게 상상했습니다. 단순히 '잘하고 싶다'는 망상이 아니었습니다. 손목을 꺾고, 몸을 말고, 물의 온도를 느끼는 아주 구체적인 상상이었습니다.
그 상상은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태랑아, 너는 지금 얼마짜리냐? 네 꿈은 얼마나 정확하냐?" 꿈이 구체화될수록 불안은 사라졌습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크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과정은 저를 '준비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가만히 앉아 있는 자가 아니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만큼 리얼하게 상상하고 움직이는 자에게 작동합니다.
어깨 통증이 심해지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만약 제가 "운이 나빠서" 혹은 "코치님이 나를 안 좋아해서"라고 남 탓을 했다면 제 뇌는 즉시 '비상경계 모드'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각을 멈추고 계획을 증발시켰겠지요.
불평불만은 나를 죽이는 독입니다. 저는 외부 환경 탓을 하는 대신, 통증을 안고도 10m 끝으로 향하는 '실행'을 선택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바람개비를 들고 내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뿐입니다.
세상은 '앎'이 아니라 '행'을 요구합니다. 행하면 반드시 알게 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던 건, 국가대표가 되는 법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방향으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보니 제가 태극마크를 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밤중에도 멈추지 않고 북극성을 향해 나침반을 들고 걸었고,
내가 도달할 지점을 리얼하게 상상하며 나의 가치를 증명했으며,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대신 바람개비를 들고 직접 뛰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세상 탓, 환경 탓을 하며 멈춰 서 있지는 않나요?
기억하십시오. 기적은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나침반을 들고 어둠 속을 달려 나가는 사람의 발끝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