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을 목에 걸고도 지워지지 않던 두려움
중학교 3학년.
소년체전이 끝났다.
운동을 시작한 지 겨우 3년.
금메달 두 개.
사람들은 나를 “2관왕”이라고 불렀다.
신문에 이름이 나오고
학교에서 박수를 받으면
그럴듯하게 보였다.
아마 나도 스스로를 잘한다고 믿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나는 잘한 게 아니라 버텼다.
다이빙대 위에 서면 심장이 먼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끝은 미세하게 떨렸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얘졌다.
그럼에도 뛰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고,
도망칠 배짱도 없었다.
사람들은 내 메달만 보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매일
‘오늘도 무서움을 이길 수 있을까’
그 싸움이 이어졌다.
체육관과 수영장에서는 박수와 격려가 많아졌다.
교장 선생님은 내 등을 두드려 주고
친구들은 나를 영웅처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 복도는 조금씩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심으로 바뀌어 갔다.
그 모든 것이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들떠 있기도 했다.
세상이 나에게 약속을 건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전국대회 2등을 하고 전화를 걸면
돌아오는 말은 아주 짧았다.
“네가 뭘 못해서 그것밖에 못했냐.”
그 말이 칼처럼 가슴을 찔렀다.
미움보다 먼저 떠오른 감정은 숙제 같은 질문이었다.
언제쯤이면 인정받을까.
얼마나 더 해야 잘했다고 말해줄까.
나는 그 답을 찾아
더 격렬하게 노력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소년체전이 끝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말이 많아졌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내년 전국체전은 더 빡세다.”
그 말들이 나를 흔들었다.
어쩌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할까 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실력이 아니라 운이 아니었을까 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가방을 메고 걷는 길에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은 늘 같았다.
‘오늘 훈련은 어떻게 또 견디지?’
어느 날 수영장에 도착하자
코치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그만두신다고 했다.
결혼하고 서울로 간다고.
말이 끝난 순간
뭔가가 나도 모르게 흔들렸다.
그날은 자유운동이었다.
우리는 물놀이처럼 수영을 했다.
웃음소리가 수영장에 퍼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공기가 빠져나가듯
공허함이 번졌다.
며칠 뒤
더 큰 소식이 다가왔다.
수영장이 공사로 문을 닫는다.
훈련은 당분간 없다.
새 코치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팽팽히 버티고 있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춰버린 것은 훈련이 아니라
내 의지였다.
그날 이후
집으로 곧장 돌아간 날은 거의 없었다.
피시방
오락실
찜질방
그리고 놀이터.
밤공기를 들이마시면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다.
누구도 나에게 훈련하라, 이겨라,
더 잘하라고 말하지 않는 시간.
부모님 전화를 무시하며
그냥 걷기만 했는데
마치 내가 주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자유가 아니었다.
책임을 내려놓은 도망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운동에서 도망친 내가 누구인지’
그 낯선 공백이 두려웠던 것 같다.
학교에 가는 날은 줄어들고
운동은 더 이상 내 고민의 중심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가 만들어준 길 위에서만 달려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길이 끊기자
나도 멈춰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
아무도 모른 척해주기를 바랐던 시간.
그때는 그 선택이 나를 지켜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삼키는 어둠 속으로
조용히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잠깐 쉬는 거라고.
다음에 다시 시작할 거라고.
하지만 속마음은 알고 있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밤.
부산 해운대.
친구들과의 영화 같은 순간들.
그리고 운동을 완전히 놓아버린 시간.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다시 다이빙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의 선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