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보다 먼저 다친 건 자존심이었다

몸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배웠다

by 태랑

창피했던 모습들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모두 창피해졌다.

줄여 입은 교복 재킷.
줄여 입은 교복 바지.

나는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그냥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훈련장에 나가
빠졌다 다시 돌아온 내 팔을 들어 올렸다.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팔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걱정이 밀려왔다.

‘다이빙을 진짜 못하게 된 거 아니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 아니야?’

앞이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건, 복근뿐

수영장은 여전히 문을 닫아
우리는 대학교 체조장에서 지상훈련을 했다.

하지만 팔이 돌아가지 않아
기술 훈련은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복근 운동뿐이었다.

훈련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몸은 훈련장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재활도, 방법도 몰랐던 시절

훈련이 끝난 뒤
체조장에 혼자 남았다.

이제 막 고1.
그땐 ‘재활’이라는 개념도
체계적인 치료 방법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다.

‘그래. 철봉에 매달려서 늘리면
팔이 올라갈 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철봉 아래서 울던 시간

옷을 입에 물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천천히 철봉에 매달렸다.
한 발씩, 의자에서 발을 뗐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중에는
침도 흘렸던 것 같다.

처음엔 5초.
그다음엔 8초.
10초… 15초…

옷을 입에 문 채
소리를 삼키며 버텼다.

고통을 참아내며
몇 번을 반복했을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팔이 조금씩 들렸다.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효과가 있어.’

그렇게 나는
매일 같은 걸 반복했다.

다행히 회복은 빨라졌다.

한 달쯤 지나자
팔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팔 굽혀 펴기, 물구나무서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데
그때는 좋아할 여유도 없었다.



무거워진 몸, 밀려버린 시간

지상에서
물속 동작을 흉내 내며
회전 동작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얼마나 쉬었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창 성장할 시기에
나는 너무 많이 놀아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나는 매일
훈련이 끝나도 체조장에 남아
혼자 더 훈련했다.

무거운 몸이
너무 답답했다.

‘이몸으로 다이빙이 가능한 거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다시, 물로 들어가다

어느 날,
아시안게임 공사가 마무리되고
임시로 다이빙장이 개방됐다.

드디어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만에 물에 들어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초부터
천천히 다이빙을 다시 시작했다.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밀려왔다.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물은 나를 받아주었지만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늘 의식하던 이름.
항상 내 앞에 있거나,
내 바로 옆에 있던 라이벌.

그가
이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아직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
그는 이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는
완전히 다른 트랙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 소식은
내 어깨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을 눌렀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아직도 여기인데…’

회복은 되고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몸보다 먼저,
내 자존심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무리했고,
더 서둘렀고,
더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때는 몰랐다.

이 조급함이
나를 다시 수영장으로 밀어 넣을지,
아니면
또 다른 부상으로 끌고 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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