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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심리학 하이브리드 위로

개발자가 읽은 심리학 - 허지원,『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by 탬 구스피크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의 책 표지에는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부서진 마음’에게 전하는 말”이라는 부제와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다정한 메시지가 적혀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주제의식을 예상할 수 있다. 그 예상은 맞으나 이 책은 타 심리학 도서와 달리 '뇌과학'이라는 무기가 있다. 단순히 '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더불어 '뇌과학'이라는 WHY가 설득력을 더해준다.


낮은 자존감과 불안, 인정에 대한 집착, 관계 집착, 완벽주의적 불안, 우울증 등 심리적 문제 상황에 프로이트, 융, 피아제와 같은 심리학 대가들의 이론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더불어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너의 행동은 당연하다'라는 과학적 당위성을 전해준다. 작가는 위로와 함께 나를 위한 숙제를 준다. 숙제는 나를 살피고 나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숙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애정결핍과 의존성> 에피소드로 유년시절 형성된 불완전 애착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를 '재양육' 하자는 단락이었다.


오늘의 숙제. 다시 한번 이렇게 이야기해 볼 것.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나는 취약했지만,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예전의 그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는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들을 지켜내겠다.
이것은 나의 삶이다.
캡처.PNG 허지원,『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뇌과학과 심리학의 콜라보


허지원 작가는 고려대학교 심리학부의 교수로 교려대학교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에서 뇌인지과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는 심리학을, 박사는 뇌과학을 공부한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뇌과학(brain science)과 임상심리학(slinical psychology)이 매우 중첩되어 이를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같은 주제에 대해 뇌가 당신에게, 그리고 마음이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뇌과학을 통해 분석과 현상정의를, 심리학을 통해 통찰과 위로를 전한다.


어떤 연구 방법론을 쓰든, 주제가 무엇이든, 모든 연구를 할 때마다 마음가짐은 같았다고 한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연구를 할 것. 과학적 연구를 조금 더 편안한 글로 대중에게 전달한다면, 어쩌면 단 한 명이 아닌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살아도 된다, 더 기대해도 된다'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연유로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은 뇌에 상흔을 남긴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체 에피소드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이끈 단락이었다. 에피소드에서 설명한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우연한 죽음'을 원하는 수동적인 자살사고를 생각하는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꾸준히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리고 실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노래와 영화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중이 이에 환호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은 삶의 의미를 찾는 행동을 우울과 연관 지었다. "삶의 의미는 진작부터 찾기 어려웠고", "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앞으로 행복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인생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이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패턴이 전형적인 우울의 증상이라고 한다.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 행복한 삶에 대한 갈망". 지금이 행복한 사람은 삶의 의미를 동경할 필요도 없던 것이다.


책은 우울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뇌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첫째로 기억을 담당하는 양쪽 해마의 부피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우울 환자의 우측 해마 부피의 10퍼센트, 좌측 해마 부피의 8퍼센트가 감소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둘째로 추론하고 계획하고 행동을 억제하고 개시하는 등의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부피도 줄어든다고 한다. 우울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여 뇌기능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과 통계는 잔인하다. 과학은 우울을 경험한 사람이 뇌기능적으로 상흔이 남았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어디까지나 과학의 영역에서 "건조하게" 바라보자고 한다. 우울의 흔적이 남았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 과학이라면 또한 흔적을 옅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과학의 영역이다. 과학자들은 전전두엽과 해마의 부피를 증가시키거나 활동성을 높이는 요인들을 탐색했다.


- 규칙적인 운동

- 꾸준한 공부

- 항우울제 복용

- 그리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

brain-5779040_1280.png 우울은 뇌에 상흔을 남긴다





'어떻게'에만 집중하세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는 결국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사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더라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나의 페르소나는 나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허풍을 은밀히 펼치는 겸손한 척하는 개발자이면서, 강아지의 온 세상이 나라는 사실에 부담스럽지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태구의 보호자이고, 기타와 드럼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 착한 후배 등 다양한 가면을 통해 '그럭저럭 괜찮은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계급장 다 떼고, 소위 스펙을 하나도 드러내지도 않고', '학벌, 직업, 지역, 외모' 등의 배경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가 곧 자존감이라고 한다. 또는 '모든 면에서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연애 혹은 결혼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에 괜찮겠다고 답할 수 있다면 꽤 높은 수준의 자존감을 소유했다고 한다.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단점이나 참모습이 드러나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에 압도된다.


그저 당신 자신을 더 편안하게 좋아해 주세요.
당신이 스스로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면,
외부의 적은 절대 당신의 마음을 해치지 못합니다.


나의 부족과 어려움을 의식하면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자. 행동이나 일, 또는 어떤 대상이 내 삶의 의미여서는 안 된다.
'어떻게'에만 집중하자.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놀지, 어떻게 사랑할지.
우리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왜 해야 하지? 왜 나더라 살라고 하지?'가 아닌 '어떻게 해야 하지?'가 맞는 질문이다.

- 규칙적인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지?

- 앞으로 꾸준히 공부를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지?

- 항우울제 복용은 어떤 병원에서 시작하지?

- 심리치료는 누구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보지?


KakaoTalk_20240605_133822189.jpg (좌)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우) 세상 모든 걸 몰라서 신기한 김태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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