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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2회 차 독서 감상

개발자가 읽은 문학 - 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by 탬 구스피크


2013년에 읽은 '상실의 시대'

나는 『노르웨이의 숲』을 2013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대학생활과 아르바이트 용돈벌이에 바쁜 대학생이었고,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읽었다. 함부르크 공항 보잉 747기에서 와타나베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노래를 들으며 스무 살을 떠올리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지하철과 캠퍼스를 오가며 이 책을 읽는 스물한 살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름다운 문장에 감탄했고, 나오코의 뒷모습에 대한 표현에서 당시에 내가 좋아한 그녀를 떠올렸다. 또한 십 년 사이에 내가 겪은 상실에 대해 곱씹었다.

나는 나오코의 1미터 뒤에서 그녀의 등과
검고 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녀는 커다란 갈색 머리핀을 해서,
고개를 살짝 돌릴 때마다 조그맣고 하얀 귀가 보였다.

girl-1263651_1280.jpg 나오코의 뒷모습에 대한 표현에서 당시에 내가 좋아한 그녀를 떠올렸다



하루키의 아름다운 비유

책이 전하는 주제의식과 별개로 『노르웨이의 숲』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만으로도 높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와타나베는 동맹휴교 선전을 하는 운동권 학생들의 "기만적 총장 선거를 분쇄하고", "새로운 전학련 동맹 휴교에 온 힘을 집결하여", "일제=산학협동 노선에 철퇴를 가하자"와 같은 문장을 보며 이들의 진정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라며 꼬집는 장면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보여주는 비유에는 뭉클함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오코에 대입했던 그녀와 짧은 연애를 했던 2013년의 나는 몇 차례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 책의 문장을 빌리기도 했다.

"온 세상 숲의 나무가 다 쓰러질 만큼 멋져"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coffee-643965_1280.jpg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애달팠던 젊은 날에 대한 무덤덤한 기록

『노르웨이의 숲』을 주제로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이 책을 스무 살 청년에게 일어난 연애소설이나 미숙한 자아가 성숙해 나가는 성장소설쯤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해석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관계 장면이 적나라하지만 연애소설이라기에는 '나'에 대한 탐구가 빠졌고, 성장소설이라기에는 '성장'의 깊이가 얕다. 나에게 『노르웨이의 숲』은 여러 사건들에 고통스럽지만 그 항시적인 고통에 초연해져서 애달팠던 젊은 날에 대한 무덤덤한 기록이었다. 상실은 이겨내고 뭐고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그것이 자살이든 자연사든 우리 곁에는 항상 죽음이 있으며, 우린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싫다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
불완전한 나라도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각하기도 해.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다.
"행복해야 해. 더 할 말이 없어.
내 몫과 나오코 몫까지 행복해져야 한다고 밖에."


KakaoTalk_20240623_220647695.jpg (좌) 산책 실컷 하고 아마 행복한 김태구 씨 (우)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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