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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May 21. 2020

형제란 부대낄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

연년생 형제 육아 속 엄마의 중심 잡기

나이 터울이 적은 우리 삼 형제는 어려서부터 늘 엄마 아빠의 옆자리 쟁탈전을 벌여야 했고, 무엇이든 나누거나 양보해야만 하는 운명 공동체였다. 형제가 잘 어울리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부모에게 있어 둘도 없는 축복이지만, 아이들 각자에게 특별한 사랑을 전해주지 못해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던 고통의 순간 또한 엄연히 존재했으니. 열 손가락 바늘로 찔러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을까. 둘째가 막 태어났을 때는 첫째가 너무 짠해서 제일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에는 둘째가, 또 어느 순간에는 셋째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기도 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보니 정말이지 첫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입덧도 심했던지라 혼자 몸을 건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돌이 갓 지난 첫째까지 챙기려니 몸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태교다운 태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하혈도 두 번이나 해서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아기가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32주 무렵부터 몸무게가 잘 늘지 않더니, 36주가 되자마자 급격한 진행으로 엄마 뱃속을 탈출해 버렸다. 2.6 킬로그램을 간신히 넘긴 작은 몸으로 신생아실에 누워있는데, 다른 아기들에 비해 너무 작고 앙상해서 마치 내가 잘 지켜주지 못해 그런 것만 같아 참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작은 몸으로 태어난 탓에 젖을 배불리 잘 먹지 못해서인지 아이는 유난히 잘 깨고 예민했다. 조리원에서 체구는 가장 작았으나 울음소리는 얼마나 컸던지, 방에서도 우리 아이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악을 쓰며 울기로 유명했다. 집으로 와서도 밤만 되면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울었고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잘 달래지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은연중에 자꾸만 정훈이와 지환이를 비교하게 된다.

'정훈이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배고플 때 말고는 마구 울고 그런 적도 잘 없었는데, 목욕할 때도 한 번도 울지 않고 온순했는데, 지환이는 참 성질이 있는 것 같다. 까다롭다.’ 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정훈이가 아기일 때 만든 앨범을 펼쳐 보게 되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다 문득 커다란 깨달음이 왔다. 정훈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어줬었는지, 24시간 그저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싶을 만큼 온 관심이 아이에게 쏠려있었다. 생각해보면 정훈이는 순할 수밖에 없었구나. 항시 대기하며 아이의 부름에 곧바로 답해주고 민감하게 반응해주고 수시 때때로 안아주고, 늘 옆에서 놀아주며 “엄마가 늘 너의 옆에 있노라.” 알려주었으니 울 필요도 울 겨를도 없었던 것.



지환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졌다. 젖 먹는 시간 외에는 내내 아기침대에 누워 혼자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우리 아가. 잘 쳐다봐주지도 못하고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찍어주고,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젖 먹는 순간조차도 엄마는 형을 신경 쓰며 빨리 못 빤다고 답답해하고, 다 먹기가 무섭게 내려놓고 형에게 가버리고, 울어도 제때 달려가 주지도 못하니 넓은 방에 덩그러니 혼자서 한참을 울어야 하고, 그러니 더더욱 악을 쓰며 울 수밖에 없었을 텐데, 엄마 아빠는 그런 아이를 보며 성질 있다고...



어쩌면 밤마다 그렇게 안 자고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낮 동안 관심 안 가져줬으니 밤에라도 마음껏 자기 바라봐주고 안아달라는 표시가 아니었을지. 그걸 알면서도, 그리 짠하다 생각하면서도, 밤새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씨름하다 보면 못난 어미는 갓난쟁이 아기에게 또다시 짜증을 한가득 퍼부어대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냐고. 제발 좀 자라고. 그러고는 또 반성하고 사과하기를 무한 반복..



그러다 정훈이의 앨범에 자극받아, 지환이와의 첫 셀카를 시도해본다. 생후 한 달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찍어보는 둘째와의 셀카. 이게 뭐라고 잠깐 사진 찍는 이 여유조차 내지 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활짝 웃고 있지만, 그간의 애씀이 느껴져 어쩐지 조금 짠하기도 하다.



첫째와 둘째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럴 수 없어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들, 방법을 찾을 길 없어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발 동동 구르며 애태웠던 시간들, 앞으로는 둘째를 안고 뒤로는 첫째를 업어주어야 하는 고된 상황 속에서도 두 아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 감출 수 없었던 시간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더 잘할 수 있을까?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물어보지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육아에 아무리 노련해진다고 한들, 그때 그 상황이 결코 쉬워질 것 같지는 않다. 그 어떤 육아 전문가가 오더라도, 전시상황 버금가는 연년생 형제 육아의 현장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못 해 준 것에 대해 너무 미안해하지도 자책하지도 말자. 결국은 부대낄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다. 그때의 나는 비록 서툴렀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날마다 더 잘하고 싶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소소한 깨달음들도 얻었으니, 그 시간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서로에게 조금씩의 상처가 남았을지언정 그 또한 성장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오늘 하루를 더욱 충실히 살아내자. 훗날 돌아보았을 때 오늘 하루 또한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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