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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리썬 윤정샘 Oct 20. 2020

아이언맨 덕분에

마음속 든든한 영웅 하나 품는다는 것


"혹시나 힘든 일이 있으면 아이언맨에게 도와달라고 해봐. 아이언맨처럼 힘이 날 거야”     


어느 평일 날 아침 아이들에게 아이언맨 양말을 신겨주며 슬쩍 아이언맨 이야기를 꺼내 보았더니 아이들은 기분이 좋은지 씩 웃는다. 그리고는 한창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훈이가 말했다.     


"엄마, 레고로 만든 내 소방차를 상윤이가 다 망가뜨려서 내가 다시 만들고 있어."

"어머 정훈아, 상윤이가 정훈이 거 다 망가뜨렸는데 화 안 났어?"

"응, 아이언맨 덕분에 화 안 났어."      


세상에! 정훈이가 화난 기색도 없고 참고 있다는 기색도 없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해서 조금 놀랐다. 싸움과 화로 범벅될 뻔했던 등원 준비 시간이 아이언맨 덕분에 아주 순조롭게 잘 넘어갔다.     

 


거의 최초로 9시 전에 세 아들이 아침밥을 다 먹었고 정훈이는 그 어느 날보다 여유롭게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은 우리 셋은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동네 산책을 했다. 노랗게 핀 예쁜 꽃을 한참 동안 가만히 관찰하기도 하고,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벌 나비들을 쫓아다니기도 하며 즐겁게 동네를 거닐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싶다기에 초록마을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거리가 제법 되어서 늘 킥보드를 가지고 출동하던 곳이다.     


“우리 오늘 아이언맨 양말도 신었으니 킥보드 두고 한 번 걸어가 볼까? 힘들면 아이언맨에게 힘을 달라고 하면 되잖아. 많이 걷고 많이 뛰다 보면 몸도 다리도 아이언맨처럼 튼튼해질 거야.”     



분신처럼 여기던 킥보드를 두고 나오자는 설득도 금세 잘 먹혔다. 두 살과 네 살, 자그마한 아이들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피어오른다. 이토록 햇살이 강렬하게 비추는 날 우산을 끌고 다니는 막내의 모습도 무척이나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쩜 저렇게 우산을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지. 첫째도 둘째도 저맘때면 산책길마다 꼭 우산을 갖고 나오는 걸 즐겼으니, 지난날의 추억도 자연스레 소환된다.      


2년마다 마주하게 되는 세 아이의 똑같은 뒷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귀여움에 젖고 추억에 젖어 아이들의 뒤를 따르는 동안, 아이들은 걷고 뛰다가 몇 번이나 넘어졌다. 그럼에도 한 번도 울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 약속한 지점까지 곧잘 걸었다. 모두 아이언맨 덕분이라고 했다.    

 


간식 탐험을 무사히 완주하고 돌아와 안방에서 상윤이를 재우고 있는데 거실에서 혼자 놀던 지환이가 안방 문을 빼꼼히 들여다보다 사라졌다 한다. 아이가 잠들고 바로 거실로 나가보니 지환이가 저 혼자서 기저귀로 갈아입고는 똥을 누었다고 했다. (지환이는 그때까지도 변기를 무서워해서 똥 눌 때마다 기저귀를 갈아입었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 엄마!" 마구 부르며 "빨리 나와. 일로와 봐. 엄마가 입혀줘"를 연발했을 텐데, 이렇게 혼자서 해낸 아이가 말할 수 없이 대견하고 예뻐 보였다.   

   

“지환아, 어쩜 이렇게 엄마도 안 부르고 혼자서 잘했어?”

"엄마는 상윤이 책 읽어주고 있었잖아."     


이럴 수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것 또한 아이언맨 덕분인가.


아이들의 배려 깊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설레고 감동 가득한 하루였다. ‘매일매일 오늘만 같아라!’ 싶을 만큼 순탄하게 흘러간 하루이기도 했다. 길고 긴 육아의 터널 속에서 가슴 터질 듯 답답하고 짜증 나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하루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하루도 있다. 그 차이는 과연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정말로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믿음의 씨앗 하나가 마법을 부려준 것일까?  

    



정훈이가 큰 수술을 받던 날,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는 무서움에 떨며 울었다. 무더운 한여름이었지만 수술 대기실은 냉기로 가득했다. 어쩌면 느낌이었을지도 모를 그 냉기가 우리의 피부와 심장으로 쏙쏙 파고들어 두려움이 조금씩 더 커졌다. 나는 아이 앞에서 울음을 애써 참았고 아이는 마취약을 투여받는 순간까지 아빠에게 안겨 흐느꼈다.      



“정훈아, 걱정하지 마. 무섭고 힘들 때 카봇 시계를 돌리면 모두가 널 도와주러 오는 거 알지? 카봇 시계가 널 지켜줄 거야.”     


정훈이는 그 힘을 믿었는지 카봇 시계를 끝까지 풀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아이가 마취약을 맞고 픽 쓰러져 잠든 후에야 시계를 풀어서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는 아이가 수술 회복실에서 나오자마자 정신이 채 들기 전에 다시 채워주었다. 그 후로 퇴원 날까지 카봇 시계는 정훈이와 함께했고, 아이는 빠른 속도로 잘 회복했다.     




생각 이상으로 아이들에게 훌륭한 믿음 씨앗이 되어준 우리의 영웅들. 힘이 들 때면 ‘카봇 도와줘! 아이언맨 힘을 줘!’ 하며 힘을 낼 수 있었듯,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언제든 불러올 수 있는 영웅 한 명쯤 품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얘들아, 우리 내일은 스파이더맨 양말을 신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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