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해군사관학교에는 3대 바보가 있다고 전해진다.
1. 체육부 활동으로 태권도를 1년 이상 하는 사람
2. 태권도 단증이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
3. 순항훈련 태권도 시범팀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사실 전승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대충 만들어낸 것인데, 술자리에서 좋은 술안주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 만든 거 치고는 많은 해사 선후배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 술안주 역할을 톡톡히 해낸 거 보면, 그만큼 태권도가 우리 해사생도들에게 애증의 존재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태권도가 애증인 이유는 1학년 때 ‘강제’로(순화된 표현으로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생도들은 1학년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주 3회 태권도를 배운다. 가끔 탁월한 태권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1학기 만에 태권도를 졸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평민들은 1년 동안 꼼짝없이 태권도를 배울 수밖에 없다. '꼼짝없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태권도를 통과해야만 본인들이 하고 싶은 농구, 축구와 같은 구기종목이나 요트, 크루즈, 조정과 같은 해양스포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과하지 못 한 소수의 생도들은 2학년이 되어서도 1학년 후배들과 함께 태권도를 하게 되니, 꼼짝 못 하게 하는 족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1대 바보의 탄생이다.
그래도 1대 바보에 포함되지 않으면 한동안 태권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태권도의 태자도 기억나지 않을 무렵, 다시금 태권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는 순간이 '순항훈련 태권도 시범팀' 선발 시즌이다. 말 그대로 순항훈련 중에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팀으로서 우리나라의 전통 스포츠를 외국에 널리 알리는 국위 선양의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생도들은 태권도 시범팀이 되는 것을 기피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각 기항지마다 2박 3일 혹은 3박 4일의 짧은 정박기간 중에 하루를 공연을 위해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친구들은 여행을 왔는데 나 혼자만 출장 온 느낌이랄까? 일본, 중국처럼 다시 가볼 수 있는 나라에서도 시간을 뺏기는 것이 아쉬운데 멕시코, 페루, 칠레처럼 쉽게 가지 못 하는 나라에서 공연을 할 때면 그 1시간, 1시간이 얼마나 아쉽겠는가.
이때 시범팀 ‘강제’ 차출에 활용되는 것이 태권도 단증이다. 나라를 대표하여 공연을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실력이 필요하기에 태권도 2단 이상인 사람을 우선 차출하게 된다. “태권도 2단 이상인 사람?"이라고 물어보면 다들 서로 눈치만 살피고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부 명예심 깊은 생도 1~2명 만이 손을 들뿐이다.
"정태영, 태권도 3단이라 하지 않았나?"
"야 너도 2단 아니냐?"
“야 제발 쉿.. 조용히 해”
선발인원이 다 모집되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훈육장교님의 표정을 다들 읽어서인지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마평이 조금씩 들리게 되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합류하게 된다. 2대 바보가 3대 바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바보들의 합창단, 순항훈련 태권도 시범팀은 그렇게 출범을 했다. 나 역시도 2, 3대 통합 바보로서 타이틀 2개를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면 술자리에서 술안주 삼을 수 있는 권리는 얻은 게 아닐까? 게다가 씁쓸한 술안주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추운 날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술과도 같은 추억이 우리 바보들에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