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태평양을 직진으로 건너지 않는 이유

[군함 타고 세계일주]

by 탱이사는이야기
태평양 동쪽으로의 항해지도. 어느덧 태평양을 절반 이상 건너간다.


- 당직사관님 질문 있습니다!

- 뭔데?

- 저희 지금 훈련 때문에 돌아가고 있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 (웃음) 우리 지금 최단거리로 이동 중인데?

- (...) 예?


태평양을 반쯤 지나 함교 당직체험을 하는 날이었다. 함교란 군함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장소로 군함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쉽게 말하면 군함의 조종실이라 할 수 있는데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군함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어쨌든 이 중요한 곳에서는 오늘도 항해를 위해 당직근무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태평양을 반 넘게 항해하고 있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우리 군함이 왜 곡선으로 항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던 것이다.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일정에 맞추는 게 목적이면 속력을 줄여 천천히 가는 게 더 경제적이었기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훈련 목적 상 베링해 근처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당직사관님께 여쭈어봤던 것이다.


- 왜 곡선이 최단거리인지 내가 바로 알려주면 재미없으니까 당직 끝날 때까지 고민해 볼 수 있도록!

- 예, 알겠습니다!


당직근무시간 동안 동기들끼리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도와주고 싶으셨는지 함교 부직사관이었던 조타 부사관께서 힌트를 하나 주셨다. "지구본을 떠올려보면 되지 말입니다."


같은 위도, 경도를 표시한 지구본. 위도가 높을수록 같은 경도를 가는데 거리가 더 짧다.
구글맵으로 측정한 최단거리. 지구가 둥근게 반영되어 있다. (역시 글로벌 대기업)

“아!!!” 우리들은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건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도가 높아질수록 같은 경도를 가는데 걸리는 거리가 더 짧다. 평면지도에서 보면 직선으로 가는 게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짧지만, 실제로는 고위도로 올라가면서 곡선으로 가는 게 최단거리였던 것이다.


누군가 지구는 둥글지 않아?라고 물어보면 왜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고 의아스러워했을 텐데, 이 당연한 사실을 실제 현실에 적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평면으로 되어 있는 세계지도에 익숙해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우리들은 갑자기 생기가 돋았다. 항해가 1주일이 넘어가고 연일 반복되는 훈련과 당직에 지쳐가고 있었는데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경험 덕분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 것을 느끼셨는지 당직사관님께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군함의 기동을 계획하는 데 있어 의미 없는 기동은 없어야 한다. 이게 장교의 존재 목적이야. 우리 장교의 준비가 부족해서 5분이 지연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5분이 아니라 300명의 5분을 낭비한 셈이야. 25시간, 즉 하루가 넘는 시간이 낭비가 된 것이지. 오늘 좋은 질문이었다.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도 궁금증을 가지고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이상 당직근무 끝”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는 태평양에서의 망치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 해군 지식 (함교, Bridge)

함교란 군함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장소로 군함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쉽게 말하면 군함의 조종실이라 할 수 있는데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군함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함교를 영어로는 Bridge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다리라는 뜻이다. 요즘의 군함이야 배 뒤에 스크류(프로펠러)를 달아 추진력을 얻지만, 과거의 배들은 바퀴를 달아 추진력을 얻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물레방아는 떨어지는 물이 바퀴를 돌리는 거라면, 반대로 배에서는 바퀴를 돌려 물을 밀어내서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다. 이 바퀴들을 움직이는 기관실이 배의 앞과 뒤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양쪽 기관실을 연결하는 다리(Bridge, 함교)에서 통제를 하기 시작한 것에 유래되어 바퀴가 사라진 지금도 통제실을 함교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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