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 야 내일 일과 뭔데?
- POD 좀 봐라, POD 좀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치면 계획형 J생도는 즉흥형 P생도에게 POD(피오디) 좀 보라고 다그친다. POD란 Plan of Day의 약자로 일일계획표를 말하는데, 수많은 승조원들의 팀워크를 통해 운용되는 것이 군함이기 때문에 하루의 일정을 서로 공유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중요도 국가원수급 별표 5개!!!)
특히 내일 훈련에 소위 말하는 ‘어리바리를 까지’ 않으려면 하루의 스케줄을 정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J의 표본인 생도들이라면 POW(Plan of Week) 즉, 주간계획표까지 미리 봐두고는 한다.
- POW에 내일 해상기동군수(유류공수급)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못 봤어?
- 유류공수급? 그게 뭔데?
- 후, 넌 내 후배였으면 진작에 훈련시켰다
유류공수급이란 유류를 공급하고 수급받는, 말 그대로 기름을 주고받는 것이다.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환태평양을 일주하는 우리 순항훈련전단에게는 장거리 항해가 필수적이었다. 최장 17일까지 육지에 다다르지 않고 바다에서 항해만 하는 계획도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기름을 다시 채워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그러한 경우까지 미리 고려하여 순항훈련전단을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DDH-2) 1척과 군수지원함(AOE) 1척으로 구성하게 된다. 바다의 ‘이동 주유소’ 군수지원함을 배치하여 기름을 자체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은 두 군함의 해상기동군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장교가 될 해군사관생도들에게 해상기동군수를 경험시키는 것도 목적 중에 하나였지만 가장 중요한 주목적은 실제 유류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정지하여 안정적으로 기름을 공급받는 육지와는 달리, ‘해상’에서는 정지를 할 수 없기에 ‘기동’을 하며 ‘군수’ 물자인 ‘유류’를 ‘공수급’하게 된다. 해상기동군수(유류공수급)이라는 풀네임을 가지게 된 까닭이다.
다음날이 밝고 우리 생도들은 함교, 함수, 중갑판, 함미 등 각자에게 부여된 위치에서, 방해가 될 새라 숨을 죽인 채로 해상기동군수(유류공수급)를 참관하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두 군함이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근접하여 주유 호스를 연결하고 기름을 옮겨주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두 군함이 부딪히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모두가 긴장감을 가지고 집중해야 하는 위험한 훈련이다.
두 군함의 기동 호흡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자 군수지원함에서는 주유 호스를 넘기기 시작했다. 구축함에서는 주유 호스를 넘겨받은 후에 주유구에 안착시켰고, 안착시키는 그 순간 음악이 태평양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응? 이 긴장되는 순간에 뜬금없이 음악이라니? 그것도 아이돌 음악이?
생각지도 못 한 타이밍에 만난 아이돌 음악은 생각보다 흥겨웠다. “저기 봐, 저기!” 누군가의 외침에 바라보게 된 곳에는 아이돌이 무리를 지어 춤을 추고 있었다.
바로 순항훈련전단의 혼성아이돌 그룹 ‘댄스팀’이었는데, 다소 촌스러운(그리고 군대스럽게 정직한) 그룹명 하고는 달리 훌륭한 춤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무용수를 꿈꿨던 Y생도를 주축으로 춤 꽤나 춘다는 생도들이 모여 아이돌 연습생처럼 혹독한 연습을 했고, 그 결과로 꽤나 멋진 군무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 순간은 분명 우리 순항훈련전단 부대원들에게 선물이었다. 지속되는 항해와 훈련으로 인한 피로감과 위험한 해상기동군수(유류공수급)를 진행하는 긴장감, 그리고 주유가 완료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나른함 등이 한데 섞여 지쳐가던 차였다. 언제 바다 위에서 이렇게 잠시나마 웃으면서 쉴 수 있었는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펼쳐진 아이돌 공연 덕분이었다.
공연이라는 선물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주유가 끝나갔다. 다시 넘어오는 주유호스에는 꾸러미가 달려있었는데 주유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 들어있는 꾸러미였다. 그 선물 꾸러미에는 옆 배 전우들이 보내는 편지와 간식거리 등이 들어있었는데 별 거 아니면서도 괜히 가슴 훈훈해지게 하는 선물들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여러 가지 행복의 선물을 전한 두 군함은 상호 경례를 마지막으로 해상기동군수(유류공수급)를 마치고 다시금 힘차게 태평양을 건너간다. 기름과 행복의 에너지를 다시 공급받아서일까? 먼 것만 같았던 미국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제 우리의 2번째 기항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입항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