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길고 길었던 14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드디어 샌프란시스코항에 입항했다. 배에서도 멀미를 안 했었는데 육지를 밟으니 괜히 멀미하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하다. 육지를 밟고 서있는데 코끼리코 돈 것처럼 뭔가 이상한 느낌? 하도 흔들리는 게 정상인 시간들을 보내왔다 보니 안 흔들리는 게 비정상 같았다. 아무리 육지가 흔들려도 뱃놈들의 여행 본능은 이길 수 없는 법! 누가 못 나가게 할세라 후다다닥 짐을 챙겨 상륙을 나갔다.
이번 기항지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에 위치해 있는 경제, 문화, 관광의 중심지다. 최초의 계획으로는 2박 3일 정박 예정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3박 4일로 변경되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리에게 피해를 준 태풍 산바 덕분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태풍 때문에 블라디보스톡 일정이 줄어들어 슬펐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일정이 늘어나다니. 솔직히 블라디보단 샌프란 아닌가? 오히려 좋아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우리의 마음만큼이나 따스한 이곳의 날씨였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9월은 30일 내내 햇빛이 창창하게 내리쬘 정도로 날씨가 좋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에 살고 싶어 할 만했다. 이런 날씨를 계속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행운일 것이다.
항구에서 조금 벗어나 샌프란시스코 도심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왠지 미국 하면 건물도 크고 사람도 크고 음식도 크고 차도 크고 다 클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많은 것들은 아기자기했다. 엄밀히 말하면 오밀조밀했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다. 크지 않은 도로와 그 중간을 지나가는 명물 케이블카, 높지 않은 건물들과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바쁜 듯 안 바쁜듯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그 분위기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언덕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부산을 참 좋아하는데 바닷가를 중심으로 꼬불꼬불한 언덕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도로가 놓여지는 그 불규칙이 너무 좋다. 특히 언덕을 올려다보는 뷰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뷰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언덕이 많은 지형에 지어진 도시가 주는 각양각색의 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샌프란시스코 역시 같은 이유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에서 여러 매력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관광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 아닐까.
[어디서 살 것인가] 에서 저자인 유현준 교수는 ‘왜 내가 부산과 샌프란시스코를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대신 설명해 준다. 저자는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에 대해 이벤트 밀도가 중요하다고 답한다. 이벤트 밀도란 사람이 거리를 걸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이벤트를 공간면적으로 나눈 것으로 예를 들면 홍대나 명동처럼 좁은 공간에 다양한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것을 이벤트 밀도가 높다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유현준 교수 식의 설명에 따르면 부산과 샌프란시스코는 이벤트 밀도가 높은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산과 샌프란시스코를 좋아한다는 것이고.
이렇게 아기자기하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 샌프란시스코. 매력적인 이곳에서 마주한 또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