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당신의 군복무에 감사합니다

[군함 타고 세계일주]

by 탱이사는이야기

우리가 여행을 매력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일상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는 것, 눈이라는 가장 좋은 렌즈에 아름다운 풍경을 한가득 담는 것, 현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이들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깨닫게 되는 '새로운 시선'이 아닐까.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을 알아차리게 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그 시선 덕분에 여행 다녀오기 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되는 경험. 그 경험 때문에 여행을 다닐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 왼쪽으로 가자

- 아니야 오른쪽이라니까?

- 아까 우리가 오른쪽에서 왔는데??


수많은 스트리트(Street) 지옥에 빠져서 길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샌프란시스코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순간이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가 아니어서 동기 넷이서 가이드북 지도 하나를 두고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며 설왕설래를 벌이고 있었는데 어느 나이 지긋해 보이시는 할머니께서 새하얀 해군 정복을 입은 우리들을 지나치면서 말씀하셨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의역해보자면 '당신의 군복무에 감사합니다'라는 뜻인데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처음이기도 했고, 게다가 우리는 미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드렸다. "할머니 저희는 미군이 아니에요!" 그때 할머니가 웃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미군이 아니더라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그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쿨하게 떠나셨지만 우리는 쿨하게 떠날 수가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뭔가 모를 감정이 우리들을 사로잡았다. 처음 보는 타국의 군인에게 표현하는 감사함. 한동안 우리들은 말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거리에서 식당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인사를 받게 되었고, 미국에서 군인들에게 흔히 하는 인사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우리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Thank you", "My pleasure", "Thank you for your support" 등으로 감사표현을 전했다.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밝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지워진 건 아니었다. 사실 우리 해군사관생도들에게도 군복은 자랑스러운 존재다. 특히 해군 정복들은 멋있기 때문에 충분히 자부심을 얻을만한 제복이다. 소개팅 때 정복을 입고 나가는 생도들의 무용담이 소문으로 들리기도 한다. 익명의 모 선배는 정복이 애프터 때 필살기라고 우리들에게 강조했다. (물론 그건 우리가 보기에 선배의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무튼! 육사의 국방색 정복보다는 우리의 정복이 훨씬 이쁘지 않을까? Go Navy Beat Army! (육사 미안..)


자부심을 가지고 찍어본 정모. 새하얗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하지만 정복은 그런 자부심인 동시에 외출 외박을 나왔을 때 얼른 벗어버리고 싶은 존재기도 했다. 공식적인 유니폼이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많은 생도들이 정복을 입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생도들이 주먹을 펴고 걷더라'라는 소문이 해군의 도시 진해에 금방 퍼져 훈육장교님들의 귀에 들어가 단체로 혼나게 되는 상황들 말이다. 꼭 생도들이 아닐지라도 '저 군바리 저거 기합 빠졌네', '라떼는 군복 입고 여자 친구랑 손 잡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했지' 등의 이야기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이지 않을까? 이렇듯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미국에서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미군들이 부러웠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미군들은 군복 입고 비행기를 타면 우선 입장을 시켜준다더라, 식당 주인이 음식값을 안 받는 경우도 있다더라 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내가 감사의 대상이 되어보니 왠지 뿌듯하기도 하면서 우리 군인들은 왜 존중과 예우의 대상이 되지 못하지? 싶은 마음에 씁쓸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이유를 알아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꽤나 복합적인 이유겠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군대에 대한 영향은 지대하다. 일단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치관이 형성되는 20대 초반에 다녀오기 때문에 많은 ‘군대문화’에 영향을 받게 된다. 군생활을 할 때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역을 하더라도 그 영향은 이어진다. 군대 기수는 군대를 나온 많은 사람들을 선후배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몇 기에요? 나는 OO군번인데"라는 말 한마디가 어느새 내가 선배구나? 반갑다야로 이어진다. 군대문화가 사회로까지 확장되는 순간이다. 재밌는 것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군대문화를 안다는 사실이다. 사회 이곳저곳에 군대를 경험한 사람이 가득하다 보니 결국 군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군대문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대문화란 꼭 부정적인 것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것이 내 가족을 책임지는 첫걸음임을 느끼는 것. 비슷한 환경의 친구관계에서 벗어나 지역, 학벌, 경제, 문화적 환경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 등은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만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부정적인 요소들도 너무나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대한 영향이 2배가 넘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좋았던 선임들보다는 안 좋았던 선임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경험. 주식 20% 수익이 주는 기쁨보다 -20%의 손해가 주는 아픔이 더 큰 경험. 다들 해보셨지 않을까?


이렇듯 긍정적인 군대문화보다는 부정적인 문화가 더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고, 이러한 경험들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지금의 군대에 대한, 군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전역한 군인으로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부정적인 문화에 대해 'OO 씨가 더 잘 알겠지만 우리 회사가 약간 군대문화가 남아있어' 등의 이야기인데, 사실 군대에는 없는 문화라서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고 군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부정적인 것에 아쉽기도 했다.


몇몇 동기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진 군인에 대한 인식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고. 그것은 욕심이라고. 다만 몇십 년에 걸쳐 군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듯, 우리의 몇십 년을 통해 군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우리가 잘 살면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만큼은 군인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졸업한 지 10년이 되고 전역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군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는 전직 군인이자, 군인들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를 외쳐주는 국민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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