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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Dec 17. 2023

Ep.31 스님과 함께 하는 가톨릭 도시 투어

[군함 타고 세계일주]

“야! 좋은 소식! 내일 법사님이 쏘신대!”

“그래서 어디 가는데?”

“성당 투어!“

”오 성당! …응?“


소중한 친구 엘리자베스를 만난 다음날. 우리 생도들에게 또 다른 좋은 소식이 찾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법사님께서 고생하는 생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신다고 하신 것! 근데 법사님이랑 성당 투어라니?


법사의 사전적 정의는 ‘경전에 통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선양하는 스님’이다. 즉, 법사님께서는 불교에 귀의하신 스님이신 것이다. (마법사나 힐러가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장병들의 종교생활을 위해 군종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그리고 원불교 이 4가지 종교가 있는데, 그중 불교의 군종장교가 군종법사 즉, 일반적으로 생도들이 법사님이라고 부르시는 분이다.


해외를 다니는 순항훈련전단은 장기간의 항해와 훈련으로 지치기가 쉽다. 그럴 때 우리는 동기들에게 의지하거나 멀리 있는 가족/연인과 통화하며 힘듦을 이겨낸다. 또 다른 방법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다. 우리들을 위해 이번 순항훈련전단에는 군종참모로 법사님께서 함께 해주셨다. 처음에 법사님을 뵈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순항훈련 출발하는 날, 옆에 있던 동기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조용히 외쳤다. “야, 야 저기 계신 대위님은 누구셔?“ 하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근무복을 입고 계신 대위님이 계셨다. 자세히 보니 머리가 반삭(?) 수준으로 짧으셨는데 처음 본 분이셨다. ”잘 모르겠네? 근데… 저렇게 머리를 짧게 잘라도 되는 거야? 왠지 선배들이 반항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아닌가?“ 그렇게 우리끼리 설왕설래하며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어느 한 동기가 말했다.


- 법사님이시잖아… 너네들 호국사(해군사관학교의 절) 안 가봤어?


1학년 때였던가, 평온해지는 목탁소리 덕분에 방석에 앉아 신나게 졸다온 기억밖에 없는 나로서는 지금의 법사님은 처음 뵐 수밖에 없었다. ‘오 순항훈련에도 법사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 다행이다… 법사님이라 머리 짧아도 혼나시지는 않겠다” 라고 나지막이 외치는 엉뚱한 동기 때문에 우리는 웃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는 법사님은 전단 지휘부 셔서 충무공이순신함에 편승하셨기에, 대청함에 편승한 나로서는 한동안은 뵙기가 어려웠는데 법사님께서 생도들에게 밥을 사시겠다고 하신 덕분에 오랜만에 뵙게 된 것이다.


그날은 페루 수도 리마의 시내를 관광하는 가이드 투어였다. 법사님께서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는 생도들에게 점심을 사주신다고 한 것이다. 그날 그렇게 불교에 귀의한 생도들은 2/3가 넘었다. 역시 군대에서의 종교는 먹을게 중요하다. (다만 4학년들이라 초코파이 가지고는 안 된다.) 그렇게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모인 우리 생도들의 첫 관광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리마 대성당’이었다.


페루는 가톨릭의 나라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다고 한다. 그날만큼은 불교에 귀의하기로 마음먹은 우리들이었지만 그러기에는(?) 성당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대성당이 위치한 메인광장(Plaza Mayer de Lima)에서부터 웅장함이 느껴졌다. 대통령궁과 시립 궁전 그리고 리마 대성당이 한데 모인 이곳에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붐벼 시끌벅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유명한 곳에 왔구나를 직감할 수 있을 정도. 리마 구시가지는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잘 보존하고 있어 마치 옛 유럽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옛 유럽은 물론이고 현대의 유럽도 가본 적은 없다.) 리마 관광의 중심지다운 시끌벅적함을 뒤로하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세상이 갑자기 적막해졌다. 가톨릭이 아닌 사람도 숙연해지도록 하는 성전의 분위기. 절로 신앙심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원목으로 만든 성전 안의 장의자들이 주는 고풍스러운 느낌과, 좌우측에 설치되어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내리쬐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잔잔한 우아함은 직접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라면 쉽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새삼 공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성당에 빠져나와서도 고풍스러움과 잔잔한 우아함에 빠져있던 우리들에게 다음 장소는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곳이었다. 좁디좁은 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가 도착한 그곳. 그곳은 수많은 유골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 즉, 카타콤이라 불리는 지하무덤이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인공의 뼈가 아니라 실제 유골들이 가지런히 보존되어 있는 그 모습. 과거를 살아온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그들을 마주한 현재의 우리들. 그 묘한 공존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책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은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풍경 앞을 서성이다 후배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그러자 후배가 보내온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타인의 죽음을 기억하며 내 앞에 놓여질 운명을 사랑하는 것. 박웅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는 자세. 특히 군인으로서 살아갈 생도인 나에게 언제 있을지 모르는 죽음을 기억하며, 나중에 다가올 운명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메인광장, 성당 그리고 지하묘지


적잖은 충격을 받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법사님께서는 70명에 가까운 생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셨다. 배가 고파 앞에 차려진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아무리 법사의 삶이 무소유라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사줘도 되는 거야 싶어서 법사님을 바라보는데 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평온해 보이시는 표정을 보고 나니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해하시기는커녕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덤덤하게 행복해 보이시던 그 모습. 법사님이 진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는 그 이후에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내가 헤아릴 순 없지만 내가 느낀 그 덤덤하게 행복해 보이시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가톨릭 성당 아래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지하묘지와 가진 것의 대부분을 우리들에게 쓰시면서도 너무나 덤덤하셨던 법사님의 그 모습을 마주했던 그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 종교가 지향하는 바는 비록 다를지언정, 그 종교들을 관통할 수 있는 ‘삶을 대하는 자세’는 있지 않을까 하고. “Memonto Mori, 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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