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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Dec 10. 2023

Ep.30 남미 미녀가 같이 놀자고 한 건에 대하여#2

[군함 타고 세계일주]

-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맛있는 거 드실래요? 저기 제 친구들 있는데 저희가 살게요!


해맑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던 사람. 그것이 엘리자베스의 첫 모습이었다. 전혀 악의 없어 보이는 순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우리끼리 따로 먹겠다며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 순전히 그 순수함 때문임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크흠.) 눈이 스윽 마주친 우리 동기 넷은 서로의 의견이 일치함을 바로 느낄 수 있었는데 우리 넷이서 그렇게 잘 맞은 적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총 5명이었는데 남자 2, 여자 3이었다. (그렇다. 그녀는 친구들이 다 여자라고 한 적은 없다.) 밝게 인사하는 여자친구들과는 달리 남자친구들은 조금은 어색해하며 멀뚱멀뚱 서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애들이 평소랑 다르게 수줍네, 조금만 지나면 금방 친해질 거야”라고 했지만 우리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를 낯선 동양인. 그것도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남자’ 넷이라니. 미안해 친구들, 너희의 주말 데이트를 방해해서. 그렇게 첫 만남은 밝음과 어색함과 미안함의 공존이었다.


- 근데 너희들은 몇 살이야?

- 우리는 23살. 대학교 4학년이야.

- 너희가 23살이라고? 세상에… 우리는 16살이야!!


세상에나. 당연히 많이 차이나도 2-3살? 정도인 우리 또래라고 생각했는데. 7살 차이라니. 놀란 건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자기들도 2-3살 정도 차이나는 또래인 줄 알았단다. 외국에 다니다 보면 한국인은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 경험해 보니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이 성숙해 보이는 것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려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만은 또래친구지!‘ 생각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궁금한 게 참 많았다. 밥 먹으러 갈 때, 밥 먹을 때, 이곳저곳 구경 다닐 때 등등 쉴 틈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K-POP 가수 중에서는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이민호는 봤는지(?) 등등. K-드라마, K-POP이 인기가 많다는 것은 듣긴 했었지만 실제 남미사람에게서 이민호라는 이름을 듣고 나니 신기했다. 이 지구 반대편에서조차 인기를 끌고 있는 이민호란 존재는!!


그에 비해 남자친구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든 주제는 역시 축구였다. 이민호 이야기에는 심드렁해 보이던 친구들이 “Do you like Football?”이란 질문 하나에 눈빛이 달라졌다. 역시 전 세계 남자들은 축구 하나면 대동단결할 수 있나 보다. 다만, 자기들은 맨유의 박지성을 안다면서 알고 있는 페루 축구선수 있냐고 물어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서 다시 멀어질 뻔했다. 이것도 미안해 친구들.


무튼! 수많은 질문에 대해 별거 아닌 대답을 해도 그 친구들은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어떻게 저렇게 순수하고 밝을 수 있지?‘ 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우리도 저 나이 때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미에서 태어나서 저렇게 구김 없는 순수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엘리자베스는 함께 하는 시간 내내 우리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참 마음 씀씀이까지 이쁜 친구였다.


헤어질 시기가 다가오자 엘리자베스는 종이와 펜을 하나 내밀며,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게 뭐라고 엄청 좋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해 둘 정도여서 ‘더 잘 써줄 걸…’ 싶었다(웃음)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단체로, 또 개별로 같이 사진을 찍으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름다운 이곳 페루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추억을 쌓았다는 것.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비록 비포선라이즈의 운명적 사랑은 아닐지라도.


엘리자베스와 친구들


찰칵.


Gracias! Elisabeth, Ken, Alice, Paloma, Raul, K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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