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의 무형노동과 ‘인정받지 못하는 노력’의 상실감
나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했고, 기대하지 않아도 미리 준비했다.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었다.
'이거봐. 나 이만큼 잘하고 있어.' 그게 내 인생의 기본값이었다.
아마도 그건, 오빠 때문이었다.(너무 남탓인가?)
두 살 위의 오빠는 엄마가 시키는 건 다 말없이 해냈다.
더군다나 중학교 때 오빠는 전교생이 본 아이큐 테스트에서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아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그런 오빠를 믿었고 오빠는 기대되는 존재가 되었다.
부모님은 그를 자랑스러워했고, 나는 그 뒤에 서서 모든걸 지켜보았다.
나는 초,중,고 내내 지기 싫은 마음으로 공부했다.
누구에게든, 특히 오빠에게는 더더욱 지기 싫었다.
'내가 더 잘해서, 엄마 아빠한테 인정받아야지' 그게 내 원동력이었다.
결국 오빠는 여러 이유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나는 치열하게 공부해 나름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때 잠깐, 정말 잠깐 '드디어 나도 인정받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건 아주 짧은 환상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말했다. "오빠는 좀 아픈 손가락이야."
그 말 속에는 '너는 괜찮은 애잖아, 넌 알아서 잘하잖아' 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었다.
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을 가고서도 원하는 게 있으면 알아서 해내고야 말았으니까.
유럽여행을 가고싶다고 생각하고선 혼자 여기저기서 알바를 해 돈을 모아서 가고,
장학금 한번쯤은 받아보자 결심하고선 2.23이었던 학점을 4.43까지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가고 나서도 '알아서 뭐든지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회사에 취직할 때도,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앓는 소리 없이 전처럼 '알아서 잘' 해냈다.
나는 사회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건 내 자존심이었다.
칭찬은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
육아와 집안일에는 성과가 없었다.
노력해도,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밤새 아기를 달래도, 이유식에 온 정성을 쏟아도, 누군가가 "수고했어,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당연한 거였다.
(이 글을 읽는 이유식 시작 전인 워킹맘에게 말한다, 본인을 위해서라면 제발 시판 사먹자. 쉬워보이는데... 하고 시작했다간 마지막에 피눈물 흘린다.)
심지어 잘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잘 자라주는 게 고맙지만, 그건 다행인거지 내 공로는 아니었다.
누구도 '너 덕분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당연한 거였으니까.
나는 그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평생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오는 삶을 살아왔는데, 육아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다할 특별한 결과는 없고
그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엄마 눈에는 지저분한 집만 보여서 잔소리를 하기 일쑤였고
남편은 본인의 힘듦이 앞서 다른 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퇴근 후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장난감을 치우고, 밥을 차려 먹고, 집안일을 이리저리 하고나면 소파에 앉는 시간이 10시였다.
그럼 그때부턴 또 육아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언어발달은 정상인지, 수용언어는 어떤지, 대근육 발달이 늦은건 아닌지, 늦었다면 어떤 장난감이 추가로 필요할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놀아줘야 하는지 등등..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왜 아무도 몰라줄까. 분명 퇴근하고나서 나도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데..'
나는 분명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성과는 커녕 내가 잘못한 점만 계속 보였고 지적받았다.
아기가 감기에 걸리면 내가 옷을 얇게 입힌 탓이고,
아기가 대근육 발달이 늦으면 내가 터미타임을 많이 안시킨 탓이고.
내가 열심히 한 모든 건 당연한거고, 하나라도 놓친게 있다면 그건 큰 잘못으로 남았다.
칭찬은 없고, 잘못만 남는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잘하는 나'를 잃어가며 내가 누구였는지를 점점 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