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에게 쓰는 편지
남동생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누운 풀처럼 꺾여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아프다.
예전의 자신감 넘치고 생기 있던 청년은 어디 가고 이제 배 나오고 야망이 이지러진 청년이 하나 서 있다.
뭘 할 계획이냐, 무슨 일을 하고 싶냐 물어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군다.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바보가 된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무거운 숨을 내뱉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마치 예전의 내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 괴롭고 짠하다.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이냐.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나도 그랬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두렵고 막막했다.
대학에 들어가 '내 인생 황금기'라 쓰고 방종을 만끽하던 호시절을 보내느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일까 깊이 고민해 볼 새도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회라는 뭍으로 떠밀려왔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며 가고 싶은 회사가 없어서 방황했고, 부모님의 강권으로 시작한 공시 준비는 나를 가두는 답답한 감옥 같았다. 시험 준비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받은 부모님의 싸늘한 시선과 냉대를 이겨낼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나의 미래를 책임질만한 대단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무작정 책상 앞에 앉아 시간만 삼켰다.
그러다 도저히 나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을 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밖으로 뛰쳐나왔지.
부귀영화와 욕심도 내려놓고 그저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한몫의 떳떳한 인간이기만을 바랐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일이라는 게 그렇더라.
첫눈에 반하는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차츰차츰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은은한 사랑 같은 것이더라.
하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좀 더 잘해보고 싶고, 그렇게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인정도 받고
그러면 비로소 사랑하게 되는 그런 게 나의 운명 같은 일이더라.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하는 경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성숙해지고 사랑도 깊어지는 것처럼 생각에 치어 할까 말까 고민하기보다 몸으로 직접 겪어내며 나와의 합을 맞춰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더라.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일을 찾는 것을 경계하면 좋겠다.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크리스마스에 명동 한복판에서 북적이는 인파를 향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사람이 한 번에 쏙 튀어나와 환하게 웃으며 너를 향해 다가올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내 평생을 책임질 거라고 확신하는 운명 같은 일이 한방에 나타나길 기다리기보다 무엇이든 네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떻겠니?
그 일이 소소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니.
일단 첫걸음을 떼고 나면 그다음은 네가 만들어가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처음 시작과 끝이 동일한 법도 없으니.
하지만 안갯속에 쌓여 앞이 안 보여 두렵다고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제자리에서 우물쭈물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니? 그 안개 너머에 세상 가장 아름다운 곳이 있다 한들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기회나 있겠니?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일단 '시작'해라.
시작하는 용기와 경험이 널 더 좋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