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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Mar 31. 2020

주름진 엄마 손 잡고 피부과에 다녀왔습니다

엄마의 마음 여자의 마음


나는 유전적으로 주근깨가 잘 생기는 편이다.

햇빛의 따사로운 은혜를 입으면 얼굴 밭에는 갈색 씨앗들이 톡톡 터진다.


몇 년 동안 깨를 잘 키우면 수확하러 피부과에 간다. 주근깨들이 잘 탈곡되는 레이저를 만난 후로 나는 색소 스트레스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




한 달 전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실로 오랜만에 피부과를 다녀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꼼꼼하다고 자부하시는 의느님(인정합니다 선생님!)과 나와 케미가 좋은 레이저의 협업으로 얼굴에 있던 주근깨를 탈탈 털고 딱지가 떨어지길 기다리던 차에 집에 다녀왔다.


딱지가 수북하게 내려앉은 얼굴을 보고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점을 빼고 왔노라 설명하며 눈총을 좀 받았지만 미운 오리가 백조 되는 과정이 어디 쉽나 생각하며 마스크 속에 잘 숨어 지내다 왔다.


그리고 기다렸던 딱지가 다 떨어졌다.

그때의 희열이란! 이제 화장으로 가리지 않아도 될 만큼 뽀얗고 보송보송해졌다.


그 주에 다시 집에 갔더니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이마에 보톡스를 맞았냐 물어보신다.

아닙니다 어머님. 단호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이마에서 윤이 나 뭘 하고 온 줄 알았다는 말이 더해진다. 극과 극으로 깨순이에서 우윳빛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한 피부를 보고 내심 신기해하시는 눈치다.


얼마 전에는 외출하면서 화장을 안 하고 마스크만 썼는데 엄마가 유심히 보신다.

화장 안 하니까 편하다고 ‘엄마도 받아보면 좋겠다’하고 말하니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하신다.

네? 엄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예전에도 여러 번 ‘피부과에 같이 가보자’하고 권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데에는 돈 안 쓴다고 단언하셨다. 그랬던 우리 엄마,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그 틈을 놓쳐선 안된다.

갑자기 나의 입이 바빠진다. 엄마가 솔깃해할 만한 정보를 흘리며 마음 뒤흔들기 신공을 시도했다. 내가 동행해줄 테니 마음먹었을 때 같이 가보자고, 피부가 환해지면 얼마나 좋겠느냐 살살 떠보았다.


어머나? 생각보다 쉽게 엄마의 고개가 끄덕인다! 좋았어!

엄마의 마음이 변할세라 다음날로 냉큼 예약을 잡고 함께 피부과로 향했다.


팔짱을 끼고 룰루랄라 가는데 엄마의 주름진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검버섯이 생기고 자글자글해진 손. 그에 비해 뽀오얀 내 손을 왔다 갔다 보고 있자니 눈이 시큰하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피부과 문턱을 넘는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점도 한 번 빼 본 적이 없으셔서 아플까 봐 긴장하시는 모습이 귀엽다. 손을 잡아 드릴까 했더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호로록 나온다.

30분쯤 기다리자 엄마가 나온다.

마취한 덕분에 참을만했다며 이야기하는 엄마 표정이 밝다.


마주한 얼굴에 설핏 설렘이 어린다.

다시 팔짱을 꼭 끼고 피부과를 나선다.


관리가 중요하다, 이렇게 하셔라 저렇게 하셔라 옆에서 종알대는데 예상치 못한 엄마의 고백이 이어진다.


“나는 평생 피부과에 돈 쓸 일 없을 거라고 했는데 역시 사람은 호언장담을 하면 안 돼.”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 엄마 많이 변했네 정말. 피부과를 다 오시고.”

“너 한 거 내 눈으로 안 봤으면 안 왔어. 지난번에 왔는데 피부가 뽀얘진 걸 보니까 부럽더라고. 네 덕분에 왔지.”


작년부터 화장이 잘 안 먹어 속상했다는 이야기, 거울을 볼 때마다 세월이 느껴져서 우울했다는 이야기, 잡티를 가리려고 애써도 잘 안돼서 스트레스받았다는 이야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뒤늦게 전해 듣는 엄마의 속마음에 가슴이 아릿하다.

이제라도 그 걱정을 덜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손을 잡고 보름 후에 만나면 우리 엄마 못 알아보는 거 아니냐며 쨍하게 웃는다.


엄마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이 탈탈 다 털려서 다 날아가면 좋겠다.

뽀얗고 하얀 피부가 엄마의 마음도 환히 밝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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