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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May 14. 2020

인생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사람은 스스로를 꽤 이성적이고 냉철한 존재라 판단하지만 사실 인간의 의식과 사고는 편향과 오류들로 가득하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합리화하지만 거대한 무의식에 의해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지하고 수용하며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저런 책들을 읽기 전의 나는 스스로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지하고 점점 성숙해지는 과정에 있다 평가하곤 했었는데, 타인의 일생을 통해 나의 삶을 투영해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무지이고 자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인간과 문화라는 사회적 틀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책, 바로 <소셜 애니멀>이다.


1인 가구로 독립해 나와 살면서 자유와 방종을 오가는 그 어디쯤에 취해 나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언컨택트의 삶을 살아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조금씩 단절되면서 나는 그 부작용을 몸으로 고스란히 후드려 맞았다. 분명 내 마음은 멀쩡해 보였는데 내 몸이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곤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속 안에서 안정되고 건강해지는 나 자신을 느끼며 비로소 사람을 왜 '사회적 동물'이라 칭하는지를 절감했다. 그건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초부터 인간의 DNA에 갖고 태어나는 일종의 '종특'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내가 속해 있는 문화의 산물이다


어쩌면 나는 얼마쯤은 내 인생의 고삐를 스스로 쥐고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생각은 <소셜 애니멀>을 읽으면서 철저히 조각났다.


나는 독립적인 존재지만 절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인간은 스스로는 크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속하게 되는 문화와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문화, 즉 환경은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다변화시키는 유기적인 힘이 있다.


책에서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두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사회적 문화라는 프레임은 평생에 걸쳐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타인과의 끝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고 사회화하며 그들과 비슷한 생각과 행동양식을 갖춘 성인으로 자란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사실 내가 속해있는 문화의 산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깊이 알고 싶다면 내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 말투, 생활 양식, 그리고 내가 태어난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나는 그 거대하고 유기적인 구조 속에 살아가며 무수한 상호작용으로 길러지고 다듬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인생은 어느 정도 결정된 방향으로 흐른다.

살아가면서 삶의 중간중간에 변수들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인생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결을 달리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주변과 동화되도록 만드는 것일까? 어떤 부분을 통제하면 인생의 방향을 틀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무의식'과 '환경'이다.


1. 무의식

무의식은 정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이다. 인간의 의사결정 대부분은 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결정된다.

무의식은 인간이 바라보는 사물이나 현상에 정서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무의식은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친구와 함께 노는 시간은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밤의 어둑어둑한 뒷골목을 보면 어쩐지 무서운 마음이 든다. 연인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을 느끼고 불의를 보면 분노를 느끼는 것과 같은 이런 감정은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이는 가치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자동화된 영역이다.


책에서는 해럴드와 에리카의 전 생에 걸친 관계 형성을 통해 무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방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담고 있어 이해하는 데 쉽지 않았지만 무의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해 지각하고 반응하며 느끼는 이런 감정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고 여기는 것들도 이미 무의식의 1차적인 작업을 마친 후에 발생하는 사후 해석에 가까운 일이다.


이성은 감정이라는 케이크 위에 장식된 데커레이션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거나 영향력이 크지 않다.

사람은 무의식의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우리 삶에 표류하는 오류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무의식은 내 삶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무의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나를 비롯해 인간에 대해 무지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2. 환경

이제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일처럼 당연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느 곳에서 나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라는지가 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의 미래를 엿보고 싶다면 지금 내가 사는 곳과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환경을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한 번 바꾸면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큼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다.


책의 주인공인 에리카는 소수 인종이고 가난하고 무지한 본인의 핸디캡을 환경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통해 일궈냈고 결국은 성취했다. 그녀는 환경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선택을 했고 이는 그녀가 계층 간 격차를 퀀텀점프로 뛰어넘는 계기가 된다.


개인적인 의지력만으로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에리카는 한 가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만일 환경을 바꿀 수만 있다면 완전히 다른 신호와 무의식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내면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소셜 애니멀> p.175


한 사람이 가진 문화 자본이나 인적 자본은 그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환경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속해 있는 문화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가치관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행동으로 나타난다. 어떤 문화에 속해있는지는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짓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문화가 행동을 결정하고 문화적 차이가 불평등을 낳는다는 책의 소제목이 깊이 와닿았다. 문화는 우리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내가 향유하고 있는 삶의 형태는 내가 속해 있는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빚어낸 것이다.



방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가득한 책


책은 해럴드와 에리카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인간들의 삶에 녹아있는 비인지적인 무의식의 영역에 대해 탐험하고 사회라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사람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인간이 갖는 삶의 패턴이나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떤 영역을 통제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련된 지침들이 두꺼운 책 안에 가득 담겨있다.


'나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갈 것인가? 내가 속한 문화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가? 사회적 동물로서 바람직한 형태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장해 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었고 그에 따른 조언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내용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 서너 번은 더 읽어봐야겠지만.


우리의 삶을 이루는 주된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내가 사회적 동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면 <소셜 애니멀>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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