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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Feb 24. 2022

취업보다 OO이 더 쉬웠어요

공부방 창업일기1


나는 영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한 지 이제 4년 차가 된 공부방은

처음 두 달 동안 0명에서 꿈쩍도 하지 않더니 서서히 2명 4명 늘어나

지금은 50명이라는 마지노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정도로 알차게 성장했다.


안방에서 거실로 출퇴근을 한다
나의 일터이자 꿈터. 아이들과 수업하는 공간


처음부터 공부방 창업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국제회의 기획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터라

컨벤션 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직접 발로 뛰어 본 현장에서 깨달은 업무의 고단함과 유동성은 내가 그려왔던 안정적인 미래를 만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심 끝에 그동안 달려온 꿈의 길을 접고 취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꿈을 잃고 차선으로 선택한 길이라

취업에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이 또한 잘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남들처럼 똑같이 노력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흉내'만 낼 뿐이었다.


나의 강점이나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

이력서를 더욱 알차게 채우려는 추가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일하고자 하는 기업의 결에 맞게 나를 드러내고 포장하는 일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객관적인 나의 상태로 보아)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이력서를 쓰고 서류에서 탈락하는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덜컥 겁이 났다.


서류심사에 탈락하는 일이 내가 못난 사람임을 만 천하에 증명하는 일인 것만 같았고

남들 보기에 부끄러웠으며 나중에는 인생에서 실패한 패배자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더 이상 내가 바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에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합격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는 이 애매한 굴레에서 벗어나 그냥 단순 명료한 일을 찾자!'


그래서 도전한 것이 공무원 시험이었다.

공무원 시험은 시험 성적만 나오면 합격이 보장된 길이니 나의 부족한 과목과 점수만 파악하면 입시를 준비하듯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부모님께서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직장'을 강조하시며 은근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길 종용하신 것도 영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의욕에 불타올라 열심히 공부했다.

합격이라는 꿈이 내년이면 눈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원하는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금세 의욕을 잃어 공부는 하기 싫어졌으며

책상 앞에서 무기력하게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취업이라는 굴레에서 도망쳤는데 이번에는 다시 공부라는 굴레에 갇혀 인생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어가는데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을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길 때

나는 1평 남짓의 작은방에 내 세상을 가두고

더 넓은 세계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먼지로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돈을 벌지 않으니 친구들을 만나도 대화에 참여할 수 없고 스스로 위축되어만 갔다.

그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자 스스로가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자꾸만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막연하게 미래를 기다리는 것도 싫었다.

자꾸만 하고 싶은 것들을 억누르는 현실이 싫어졌고

사람들 앞에서 밝고 명랑했던 내가 자신감도 잃고 시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서 친구들처럼 경제생활도 하고 당당하게 나의 삶을 꾸려보고 싶었다.

나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고 싶었다.


고민과 시름이 깊어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한 어느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고 이제는 공부를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몇 십만 원을 벌더라도 사람 노릇 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에 터져 나온 말이었다.


부모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큰 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의 길이도 늘어났다.


하지만 잦은 실패로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 나를 보면서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사회에서 내 몫을 하며 당당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절박해졌다.

뭘 해도 이것보단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며칠의 시간이 지나 부모님께서도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셔서

'이제 네 뜻대로 하고 살라'는 허락이 떨어졌고

때마침 지인의 부탁으로 영어 과외를 시작했던 게

오늘날 공부방을 운영하는 데 첫 단추가 되었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취업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20대 친구들의 모습을 나의 20대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취업에도 실패해 보고 공시에도 실패해 보면서 창업이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쉬웠다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취업만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보고 싶었다.


난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각오로, 직장에서 일하는 노력만큼 날 위해 일한다면 직장 생활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취업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학교 같은 곳일 뿐, 평생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않을뿐더러

결국 나를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데리고 살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닌가!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고 발전시켜서 1인 기업가로 성장해

'나'라는 브랜드를, 상품을, 그리고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창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매주 연재할 공부방 창업 일기에서는

본격적으로 공부방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부터

작은 씨앗으로 시작해 오늘날까지 한 단계씩 성장시켜 온 과정을 소소하게 정리해 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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