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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Mar 05. 2022

40대에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겠어?

공부방 창업일기3


동갑내기 선생님이 스카우트되었다는 학원을 구경 갈 기회가 생겼다.

새롭게 올린 신축 건물에 150명 정도 동시 수용이 가능한 강의실

그야말로 학원 강사에게는 꿈만 같은 강의 환경이었고

그 단상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와, 진짜 성공했구나!'하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협상하고 있는 급여가 월 800만 원이라고 했다. 월 800이라니!!

당시 내 급여의 2배가 넘는 수입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접 눈으로 보고 오니 너무나 너무나 부러웠다.

어떻게든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하루빨리 그 선생님처럼 멋지게 수업하는 일타 강사로 우뚝 서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동료의 성장을 단기간에 눈앞에서 목격하는 일은 크나큰 자극제가 되었다.

그렇게 심기 일전해서 학원 생활을 이어가려던 찰나

이번에는 원장님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갑작스러운 강사의 이직으로 인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믿었던 직원의 이직 소식에 겉으로는 덤덤한 척하셨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그 선생님의 이직 이후 원장님 수업의 퀄리티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목소리의 열정은 점점 사그라 들었고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들여다보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수업 사이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수업 내내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 기민한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시간이 지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꽉 찼던 교실이 텅 비면서 깨지는 반이 생겨났다.

강사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학원으로서는 치명타인 셈이었다.

그렇게 한 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학원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나는 그곳에서 일 년을 겨우 채우고 새로운 제안을 받아 다른 학원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원장님은 학원을 다른 분께 넘기고 동남아로 휴양을 떠나셨다.




어느덧 세 번째 학원에서의 강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는 초중등 수업을 하면서

유치원 방과 후 영어 수업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학교와 멀리 떨어진 상업 지구 오피스 빌딩가에 있는 학원이라 그런지

아이들 모으기가 쉽지 않았고, 이는 고스란히 급여에도 반영이 되었는데

벌던 가닥(?)이 있으니 줄어든 월급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내 그릇과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굳은 의지와 노력과는 달리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점점 좌절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급여가 나의 능력과 실력을 반영하는 것만 같아 우울해지려던 찰나


교재 거래처 사장님의 소개로 영유아 영어 수업을 하는 회사를 소개받았고

간단한 일(?)처럼 말씀하시는 사장님 말씀을 듣고

학원과 병행하면 벌이가 괜찮겠다 싶어 덥석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그때 생각에 웃음이 난다.

세상에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몰랐기에 무모했고 무모했기 때문에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2년간의 투잡 시대 막이 열렸다.


매일 오전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네 다섯 군데를 돌면서

2시쯤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넘어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1시간 가까이 수업을 하고 나오면

정신없이 악셀을 밟고 다른 원으로 이동하기 바빴다.

수업 시간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 이상한 구조(?)였다.


한 달에 한두 번은 회사에서 하는 저녁 미팅에 참석해

선생님들과 장시간 회의도 하고, 교구도 손수 만들어야 했고

수업 시연 연습에 때마다 있는 원내 행사까지 소화하며

그야말로 전천후 캐릭터로 변모해갔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차 안에서 점심을 대충 때우면서도

돈 벌면서 경험도 쌓는다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며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때의 경험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초등 저학년 친구들과 수업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그동안은 중고등 친구들을 대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강의식 수업을 해왔던 터라

수업 내용의 퀄리티 외에는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없었는데

어린 아가들과 수업해 보니 수업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표정이나 말투부터 부드럽고 따뜻해야 하고

아이들의 말 한마디, 관심사에도 귀 기울여 반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나와 수업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 "재밌다!"는 말 한마디가 수업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조카도 없었던 터라

어리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쩔 줄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그러는 동안 학원 강사 일도 점점 숙달되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아 교재를 제작하는 업무에도 참여하게 되고

학부모님들께서도 '나'를 보고 아이들을 맡겨주시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성장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미래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오늘 내일만 보며 달리던 어느 날

학원 원장님께서 신규 선생님 면접을 봐야 한다며 같이 고민해 보자고 찾아오셨다.


입사 지원하신 선생님의 이력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지원하신 선생님 나이는 40대 중반이시고요 어쩌고저쩌고~"

원장님이 계속 말씀하시는 데 다른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학원 강사 지원이라고?

내가 하는 일이 40대에도 구직을 해야 하는 일이었어?!

생각하지 못했던 한 줄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목덜미가 뻣뻣해지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는 40대에 뭐하고 있을래?

그때도 학원 강사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살 수 있겠니?

그런 내 모습은 마음에 들어? 능력 있어 보이니?

언제까지고 지금 이 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있니?


40대에도 구직을 위해 학원에 이력서를 내야 하는 나의 모습

내 눈에는 절대 유능해 보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 학원이 지역 최고가 아니라면.

누군가 나에게 끊임없이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눈앞이 어질했다.

그럼 넌 40대에는 뭘 하고 싶니? 어떤 모습이고 싶어?

.

.

.

그때는 나를 고용해달라고 찾아다닐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 내가 원장이 되어야겠다!

내가 나를 고용해야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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