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민 Feb 06. 2020

사람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래, 운전을 조심했어야지!"


"아니야. 아빠는 전혀 잘못이 없었어. 그곳은 신호가 없었고, 그 사람이 아빠의 차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그 사람이 잘못을 인정했지만, 법으로는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었어."


나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술이 걸쭉하게 되면 이렇게 한 번은, 한 사람은 통곡을 하며 끝이 난다. 그 주제는 아버지와 관련된 자신의 추억, 아픔 이런 것으로 말이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각각 다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2학년 기말고사 마지막 날, 교육철학 시험이 끝날 때 그때 교통사고가 나셨다.  처음에는 아버지 살게만 해달라고, 신에게 정말 간절히 기도했고, 신은 우리 가족이 가여웠는지 정말 살려만 주셨다. 그렇게 10년 아프시고,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우리 형제는 각자의 다른 기억으로, 각자의 기억을 추억한다.


아버지는  사회에서 성공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 성공으로 우리와 함께한 시간은 적었던 분이었다. 한 살  위 인 언니, 그리고 중간 딸은 나, 나에게 5살 어린 남동생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각각 다르다. 한 분이지만 각자에게는 다른 기억의 아버지로 남아있다.


나에게는 항상 성실한 아버지, 항상 노력하시는 아버지로 살아있다면, 언니에게는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안타까운 아버지, 남동생에게는 응석도 제대로 한 번  못 부려보고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기억은 다르지만 모두에게 항상 그리운 존재인 것은 공통점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방황을 참 많이 했었다. 바쁘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친구들에게 충족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집을 가출하기도 했다. 왜냐고, 학교를 다니기 싫은 그만두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아주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와서도 학교는 정말 닭장 같았었다. 그래서 자유를 갈망했었다. 그러다 친구와 자유를 현실로 진행하다.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가 학교로 오셔서, 나의 모든 짐을 챙기게 하시고, 학교를 그만 다니자 하셨다. 학교의 모든 짐을 싸고,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  나에게 한 마디 던지셨다.


"아빠는 정말 힘들 때, 네가 교단에 서있는 모습을 생각하고 다시 힘을 낸단다."


나는 그때 통곡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다. 바쁜 부모님에 대한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반항이었는데, 아버지의 바쁜 사회 활동 그 근원은 나를 위한 사랑이 었음을 느끼고, 난 그렇게 고3 때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었다. 나의 소질적 놀던 친구들은 정말로 내가 미쳤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방 사립 사범대를 입학을 했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에 정말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지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사고는 그날의 나의 기억을 일깨워 주었고,

신에게 제발 아버지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다.


임용고시를 합격할 수 있는 간절함도 어떻게 보면, 병간호하고 있는 엄마와 미국에 유학을 가버린 언니, 아직 어린 남동생을 생각하며 내가 선생님이 되어야만 했다.

정말 간절한 힘이 임용 합격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임용에 합격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퇴근길은 항상 아빠 병원을 들러서 일까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후회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드렸으니깐


하지만 아픈 아버지와 오랜시간을 같이 있지 못했던 언니와 군대를 갔어야 했던 남동생은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가슴 시린 미안함이 있나 보다.


항상 5월 어버이날이 오면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내가 다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뭘 할 것 같아? 제일 싫었던 닭장 같은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데도, 정말 가능하다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아빠하고 단 둘이 데이트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나도 울고, 아이들도 운다.


그리고 오늘 꼭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 하게 데이트 약속을 잡으라고 한다.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똑같은 일도, 동일한 사람도 각자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난 지금 이 순간

항상 마지막인 것처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


왜냐고,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아빠와, 단 하루 데이트하지 못했던 것이니까.


항상 바빴던 아빠에게

단 하루라도 나의 데이트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했던 것이 한으로 남기 때문이다.


교통사고가 났던 아버지, 그렇게 아픈 상태로 10년이 계셨던 나의 아버지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다를 수 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니와 남동생에게도 아버지가 이젠 아픔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 그 시절, 우리 가족은 할 수 있는 최선을 각자가 하고 살았으니깐, 각자의 자리에서 말이다.


각자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 by 태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