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코티 찾아 삼만리

피렌체 - 150년 전통의 비스코티가 있는 곳.

by autumn
DSC05221.JPG 최고의 비스코티를 판매하는 곳. ANTONIO MATTEI.

사건의 발단은 때로는 시시콜콜한 이유에서 일어난다. 내가 이곳을 찾아 떠나게 된 여정의 발단도 더 없이 시시콜콜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쯤 내가 디저트샵을 운영하고 있을때였다. 나는 두달에 한번정도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하곤 하는데 그날도 몇년간 해 왔던 것과 똑같이 많이 자라난 뿌리에 갈색 옷을 덧 입히고 아빠를 닮아 곱슬거리는 머리를 좍좍 펴 줄 매직펌을 하고 있었다. 워낙 시간이 오래걸리는 시술인지라 지루하지 않도록 두꺼운 잡지 책을 여러권 들고 온 나는 잡지 책 안을 수 놓고 있는 예쁘장한 모델들과 뷰티용품들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읽어넘기고 있었다. 나의 주 관심사가 뷰티쪽이 아니었기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가끔씩 커피나 케익에 관련된 맛집 기사가 나올때면 더 없이 눈을 반짝거리며 기사를 첫 글자부터 끝 글자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정독해서 읽고는 했다.

그렇게 아주 우연히 Antonio Mattei라는 곳을 알게 됐다. 이곳의 관련 기사는 잡지의 아주 작은 한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내게 작은 귀퉁이에 있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기사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인상적이었다. 역사가 150년쯤 되었고(Since1858) 비스코티라는 과자를 처음 만들어낸 곳이라고 했다. 물론 왕실에 바쳐질만큼 그 맛과 품질도 대단했다고. 한창 특별한 카페 메뉴를 구상하고 있었던 나는 호기심이 머리 끝까지 차 올랐다. 150년된 매장의 비스코티라니. 내 마음속에 이미 그곳은 가봐야 할 과자점 리스트의 1순위로 새겨져버렸다.

하지만 가고싶다고 해서 카페를 내버려두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그곳이 잊혀지고 있을 때 쯤 재계약의 시기가 다가왔고 건물주가 그당시 홍대 일대의 세태대로 과도하게 세를 올리는 바람에 결국 나는 매장을 정리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와 홍대 매장을 얻을 때부터 인연을 맺고있던 부동산 실장님의 도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매장을 정리 한 덕에 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았던 나는 매장이 정리 되자마자 두 달 남짓한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물론 그중에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Antonio Mattei'의 이름도 잊지않고 적어넣었다.

DSC05239.JPG?type=w966 프라토의 골목길.


두 달여의 긴 여정중에 중간쯤에 위치했던 이태리행. 안토니오 마테이는 피렌체에서 조금 떨어진 프라토(Prato)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스마트 폰이나 구글 맵이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아서, 그리고 여행 초반에 영국에서 집시들에게 아이폰을 털렸던 나는 ( 영국에서 아이팟을 구매해서 가까스로 인터넷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무료 와이파이가 물론 없었던 상태라서, 숙소에서 지도에 표시해 온 정보만으로 안토니오 마테이를 찾아가야만 했다. 내가 이곳을 찾아 가겠다고 말했을때 당시 머물렀던 숙소인 '이름 없는 민박' 주인장들은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며, 그리고 피렌체에 왔던 한국인 관광객 중에 프라토라는 소도시를 비스코티를 위해 찾아가는 사람은 처음봤다며 신기하게 나를 바라봤었다. 그정도로 안토니오 마테이를 찾아가는 일은 내게 험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낯선 길,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험란함과 생소함이 더 없이 기다려졌다. 피렌체에서 프라토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했는데 두세정거장 정도로 짧은 거리였지만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기차를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 프라토 역에 도착해서 역 주위를 두리번 거려 보았는데 도무지 미리 검색해온 주변 풍경과 역 근처의 모습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서로 통하지 않는 콩글리쉬와 이태리식 영어로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 프라토라고 표시된 기차역 두군데 중에 다른 한곳에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아.. 어찌할 것인가.

당당히 나는 그곳에서 걸어서, 버스를 이용해서 찾아갈 것을 선택했다. 이미 기차역에서도 많이 걸어오기도 걸어와 버렸고. 햇살이 따뜻한 오후라서 11월이라는 날씨도 춥게 느껴지지가 않았으니까. 오히려 프라토라는 작을 소도시를 둘러볼 겸 잘 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긴 시간 여행을 하면서 좋은점은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는것이, 콩글리쉬일지언정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 저사람에게 도움을 구해가며 길을 찾아가는 게 즐거웠다. 철저히 한국 안의 일상에서 벗어난 나, 그들에게 한없이 이방인인 내 모습을 느끼는 것이 어느덧 여행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로 느껴졌다.

이태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다 친절했다.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테러가 만연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아니면 동양에서 먼 길을 날아 온 한 젊은 여자가 비스코티 하나 맛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모습이 가여워서 그랬던 것일지도.
이태리 아주머니 한분이 알려준 대로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걸어서, 그러다 중간에 만난 풍채 좋은 아저씨와 아저씨의 아들 마르코가 (눈부시게 잘생겼던, 턱에 피어싱을 한 청년 마르코. 그의 미소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고....) 손수 구글맵을 찾아서 알려준 길을 따라서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안토니오 마테이가 근접해짐을 알 수 있었다.

DSC05236.JPG?type=w966 프라토의 전경.

분명 이 골목 어딘가에는 있을텐데... 작은 골목길이 원채 많은 이태리의 길 특성으로 인해 좀처럼 어느 골목으로 가야 할 지 갈피를 못잡고 있던 찰나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신사분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주었다. 그는 비교적 다른 프라토 주민들보다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에게 안토니오 마테이라는 비스코티 가게를 찾아서 한국에서부터 날아왔다고 설명을 하자 신사분은 환한 미소와 함께, 약간은 놀란듯 커다랗게 확장된 눈동자를 보이며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놀랄일이냐고 대답했더니 글쎄, 그 신사분이 놀라운 말을 내게 해 주었다.


자신이 그곳의 오너라는.


안토니오 마테이의 오너를 길에서 만나게 된것이다. 하필 내게 도움을 자처한 사람이 그분이었다니.


DSC05221.JPG?type=w966 드디어 찾은 안토니오 마테이.

작은 우연이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아저씨의 호탕한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기꺼이 나를 위해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 아저씨는 안토니오 마테이까지 나를 데리고 가 주었다. 가는 동안 피렌체에 대해, 여행에 대해,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나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실 매장에 도착 할 때까지는 오너라는 아저씨의 말을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워낙 이태리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짓궂은 농담도 잘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지라 이 분도 내게 장난을 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니까. 매장에 도착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싶어서 일말의 의심을 품은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잡지에서만 봐 왔던 안토니오 마테이의 외관이 드러났다. 의심의 50%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DSC05284.JPG 안토니오 마테이의 비스코티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저씨의 입에서 직원들을 향해 이태리 말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고 그 말을 들은 카운터에 있던 여자 직원은 아저씨가 나를 처음 봤을때 보였던 놀란 눈동자를 만들며 나와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보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아저씨는 영어로 이 아가씨에게 맛있는 비스코티를 어서 주라고,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여자분에게 당부 하고는 매장 밖으로 사라졌다.

매장안은 비교적 작았고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그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매장을 한참 두리번 거리던 나는 역시나 영어를 잘 못하는 직원분과 조금 어색한 시간이 흐르려고 할 때쯤 포장되어있는 커다란 비스코티 봉지를 두개 손에 들고 계산을 마쳤다. 해가 빨리 저무는 11월인지라 조금 더 프라토를 돌다가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환한 미소와 함께 안토니오 마테이를 나서 다시 프라토 시내를 향해 발을 돌렸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저씨와 이메일 주소라도 교환 할 걸,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통성명을 잘 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처럼 나도 이름 마저 묻지 않고 온 것이다. 재미 있는 인연이 그저 하나의 우연으로 끝나버린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곳에 가서 아저씨를 다시 만나 나를 기억하고 있냐고 물어보고싶다. 그리고 그때에는 꼭 아저씨 이름을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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