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1호점의 낭만-1

시애틀 여행의 첫걸음.

by autumn
시애틀의 파이크플레이스 마켓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는 내가 처음 캐나다에서 스타벅스라는 카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고, 창업을 하고, 그리고 그걸 마무리 한 이후에도 내게 가장 영감을 많이 주는 커피숍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흔히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부류의 허세섞인 이야기 처럼 들을 사람들도 있겠으나 진정한 스타벅스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의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 하는지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스페셜티 커피 열풍이 불고 있고, 이미 에스프레소 음료와 그를 이용한 베리에이션 음료들이 흔하게 널려있어서 그 특별함이 많이 잊혀지고 퇴색되었지만 처음 스타벅스를 접했을 때 사람들이 받았던 감동과 충격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스타벅스라는 이름이, 그를 대표하는 사이렌이 그려진 초록색 로고가 그렇게도 많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오르내렸던 것일게다.


스타벅스는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처음으로 스타벅스를 가 본것은 대학교 초년생때였다. 뉴스와 잡지에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대앞에 스타벅스가 들어왔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스타벅스라는 그 이름은 뇌리에 깊게 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모든것에 설레임을 느끼고 작은 실수 하나도 두려워하던 20대 초반에는 혼자서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강남역 근처에서 스타벅스를 처음 가보게 됐다. 그 방문을 기억하는 이유는 커피 맛이 유독 좋아서, 스타벅스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가 아니라 당황스럽게도 음료의 이름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컵에 주문자의 이름을 써서 픽업대에서 불러준다.


지금이야 워낙 스타벅스를 카피한 카페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서 특별할 것 없는 이름들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에스프레소'라던지 '아이스 화이트 초콜렛 모카'라던지 하는 이름은 생소하고도 어렵기 짝이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외워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덤덤하게, 이런 이름쯤이야 수백번은 더 주문해보고도 남았다는 듯이, '난 성남 촌구석에서 와서 이런 음료는 난생 처음이라 메뉴를 말하다가 단어를 틀리거나 더듬을 것만 같아서 두려워요!' 라는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주문하기 위해 얼마나 떨었던가. 그 긴장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 나의 스타벅스 첫번째 방문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저 주문 할때 그 기나긴 외래어들이 어렵고 생소했고, 결국 주문하다가 이름을 까먹어서 재차 다시 얘기하고 말을 더듬어야 했던 당황스러움때문에 남아있는 것이고 스타벅스에 대한 감동의 기억은 아니다. 처음으로 하워드 슐츠가 전달 하고자 했던 스타벅스의 감동을 느낀 것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 시절이었다.

3월초에 도착한 토론토의 날씨는 아직 많이 차가웠다. 워낙 추운 날씨로 유명한 도시였기도 했고, 난생 처음 가족과 떨어져 지구 반대편에서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두려워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속 토론토의 첫 느낌은 '회색'이다. 회색빛깔의 빌딩 숲으로 몰아쳐오는 칼바람을 뚫고 어디론가 몸을 녹일 곳이 필요했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로고인 초록색 사이렌을 따라 홀리듯이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바람을 안고 들어간 스타벅스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은은하고 노오란 조명이 내려앉은 그곳의 왼편으로는 소파에 앉아 카푸치노를 머그잔에 들고 종이 신문을 읽는 신사분이, 정면으로는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이 Bar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추위에 발그레한 볼을 하고 멍하니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바리스타는 살짝 눈 웃음을 지어 나의 방문을 반겨주었다.

사실 처음엔 낯설기도 했다. 그의 그 눈웃음이.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었기때문에.
지금이야 어느정도 커피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알려져 있어서 바리스타라는 사람들이 손님에게 말을 걸고, 커피에 대해 설명하고 미소를 날리는 것이 낯설지만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스타벅스라는 커피점은 들어와 있지만 '에스프레소'의 문화마저 들어온 것은 아니었기에 손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커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바리스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랬던 그 당시에 캐나다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바리스타의 친절함과 눈웃음이란 당황스럽고 생소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주문을 하려고 다가서자 그는 늘상 그래왔다는듯이, 마치 나를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내게 안부를 묻고 날씨가 많이 춥지 않냐며 말을 걸어왔다. 물론 그는 영어에 서툴은 나를 보며 어학연수생이거나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나의 입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나의 느릿느릿한 대답과 말을 천천히 기다려 응대해 주었다. 그리고는 따뜻한 카페라떼를 정성껏 만들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바로 그 기억이다. 내게 있어서 스타벅스란.


차가운 회색빛 도시에서 따뜻한 노란 불빛으로 나를 데려온, 말을 더듬는 외국인 어학연수생에게도 웃으며 커피에 대해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는, 이야기가 있고 따뜻함이 있고 향기가 있는 바로 그곳.

너무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 헤져버린 나의 영감책(?)


그 이후 나는 스타벅스라는 카페에 대해 본격적으로 궁금해졌고 서점에 들러서 스타벅스에 대해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책부터 뒤지는 습관이 있다. 네이버나 구글에 가서 간단하게 검색해보면 알수있는 정보들이 넘쳐나는데도 도무지 그러한 행위는 내게 습관이 되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난 뼛속까지 아날로그인 사람이라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 핑계로 책 냄새 한번 더 맡으러 서점에 가고싶어서인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잊지않고 서점으로 향해 스타벅스에 관한 내용을 뒤졌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이용한 몇몇의 상업적인, 알맹이 없는 책들도 있었지만 결국 보석같은 책 한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스타벅스의 창업주 (실제적 창업주는 아니지만 지금의 스타벅스를 있게 한 사람)인 하워드 슐츠의 자서전이 그것이다. 스타벅스 창업에 관련한 책이기때문에 경영관련 서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의 자서전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가 자라난 성장 배경에서부터 스타벅스를 알게 되고 그를 인수해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기까지의 일들을 적어내려간 책이기때문에.

나는 자기계발서라든지, 경영, 경제에 관련된 서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흔해 빠진 충고나 담겨져 있는 책들이 너무 많기때문에 그 책더미들 가운데 정말 좋은 내용의 책이 섞여있다고 해도 대부분 시간을 낭비했던 기억으로 인해 그쪽 코너에는 잘 가지도 않는다. 이 책도 내게 특별했던 토론토에서의 스타벅스의 기억만 아니었다면 펼쳐 보지도 않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계기야 어찌됐든 결국 읽게 된 그 책은 내게 크나큰 영감이 되었다. 하워드 슐츠는 재능있는 기업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에 홀린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첫장부터 끝장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들었으니까.


그 책은 스타벅스에 기대하고 있었던 내 기대감을 충족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그의 이야기와 스타벅스가 전달하고자 했던 철학을 담고있었다. 그 철학은 놀랍게도 내가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스타벅스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었다.

하워드는 스타벅스가 단순히 커피만을 판매하는 커피숍이 아닌, 사람들에게 낭만을, 하루의 위안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이태리의 에스프레소 바에서의 사람들이 그렇듯, 바리스타는 오랜 친구가 되어 손님들을 맞이해주고, 커피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때로는 이곳이 정치적 토론의 장소가 되고 대화의 장소가 되고, 은은한 음악을 들으며 일상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싶어했던 그 결과물을 고스란히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성공한 기업가들을 보면 단순히 돈을 쫓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 나갈 창조물에 대해, 기업에 대해 애착과 자긍심, 그리고 책임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우후죽순 생겨 가맹비만 받아 챙기고 결과에 대해 더이상 관리도 책임도 지지 않는 모방범들과는 다른 정신이다. 나는 그것이 닮고싶었고, 내가 사랑하는 커피와 카페문화에 대한, 하워드가 그 옛날 파이크 플레이스에서 느꼈을 그 감동을 절실히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 방문은 그 어떤 곳 보다도 내게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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