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보다 해몽

by Tae

오늘 퇴근하면서 문득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 재밌는 해석이 떠올랐다.

주인공 그레고르의 가족 구성원(아버지,엄마,여동생)과 그의 변신에 대한 해석을 달아서 그의 이야기를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로 거리를 좁혀보자. 이 이야기가 진짜로 더 비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말이다.



책을 읽은지 시간이 좀 지나서, 줄거리가 틀리면....어쨌든 내맘대로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비틀기전에 대충 요약을 해보자. 작품의 내용은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요약]

그레고르라는 평범한 청년은 가족의 경제적인 가장이였다. 그는 엄한 아버지와 친절한 어머니 그리고 상냥한 여동생과 함께 살던 어느 날 바퀴벌레로 변해버린채 눈을 뜬다. 변신 후 초반은 가족에게 나름 상냥한 보살핌을 받게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기둥이 사라졌기에 가세는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경제적인 빈곤이 시작되고 난 이후로부터 그레고르는 점차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시작하고, 가족갈등의 원인이 되고 끝내 멸시받는 존재로 변한다. 그 이후 모종의 사건을 통해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파편에 맞아 홀로 방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은 이제 우리 인생의 걸림돌은 사라져버렸으니 더 밝은 미래를 꿈꾸자며 이사를 준비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비틀어보자.

[자연이라는 아버지]

작중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엄하고 권위적인 존재이다. 좋게 말하면 과격하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한 존재이다. 바퀴벌레가 됐다고 아들한테 사과를 던져 죽인 모습을 봐라. 변신 이후 그레고르에게는 여동생이 방을 청소해주는 것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걸로 기억한다. 이 아버지는 자연 그 자체와 닮아있다. 우리를 탄생시켰지만, 언제나 먼 발치에서만 우리를 지켜주거나 혹은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고 끝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과를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아버지는 자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고 사망하는 그레고르는 물질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회라는 어머니]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친절한 존재이다. 바퀴벌레로 변했지만, 아들을 걱정하고 사랑한다. 그녀는 종종 그레고르가 잘 있는지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그의 방에 들어가기도 해본다. 물론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재빨리 떠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후 경제적인 빈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그레고르의 끔찍한 모습을 보게되자, 그녀는 끝내 도망을 치고만다.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사회 혹은 타인들의 모습과 비슷해보인다. 우리는 타인들과 사회구성원, 친구 혹은 동료라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이 관계가 그레고르의 어머니처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올때도 있고,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또 동시에 인생에 직접적인 손해가 되거나, 너무 가까워지려하면 되려 멀어지기도 하기 마련이다.

작 중 어머니로부터 멸시받고 외면받는 그레고르의 모습은 모종의 이유로 경제적인 역할을 할 수 없게되고, 추해진 내가 사회로부터 거절당하고 외면당하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아라는 여동생]

작 중 여동생은 그레고르와 가장 가까운 많은 인물이다. 그레고르의 방에 매일같이 들어가 식사를 차려주고, 때로는 그레고르의 끔찍한 모습을 직접 보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녀를 그레고르 혹은 나 자신의 자아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직접적으로 보살피고, 때때로 본인을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식사를 차리고 청소를 하는 그녀처럼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고르와 누구보다 가까운 이 인물은 우리의 자아 그 자체라고 해석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그런 그녀에게 마저 끝내 외면받고 멸시받는다. 그렇다면 이 여동생의 외면과 멸시는 그레고르의 자아의 죽음 혹은 소멸로 연결된다.



[그레고르의 변신과 죽음]

이제 그레고르의 변신에 대한 해석을 달며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의 변신은 삶을 시작함 그 자체. 즉, 태어남 그 자체라고 생각해보자. 이 작품은 그레고르가 바퀴벌레로 변한 채 눈을 뜨며 시작하고 그로 인해 모든 이야기가 파생된다. 마치 우리가 신생아로 눈을 뜬 것 처럼 말이다. 이 가정하에 그레고르의 죽음을 다시 돌아보자. 그레고르는 물질적 죽음, 사회적 죽음 그리고 자아의 죽음이라는 3번의 죽음을 통해 끝내 사라진다. 이 세가지 죽음을 통해 죽는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에게 짐이되어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외면받고 미쳐버려 자아조차 잃어버린채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제 이 죽음은 한 마리 거대한 바퀴벌레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다. 왜냐면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많이 존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한마리의 바퀴벌레로 죽은게 아니라, 모두에게 버림받고 자신에게 마저 버림받고 쓸쓸히 한명의 외롭고 비참한 '사람'으로써 죽은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이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이사를 준비한다. 나의 이런 비참한 죽음을 비웃듯이 모두가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이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사가 아닌, 우리에게 짐이 되어버렸다고 이미 낙인찍힌 사람의 죽음을 사회와 자연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슬퍼해주지 않는 죽음이라는 개념마저 한번 더 죽이는 것이다.


진짜 무섭고 비극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당신이 이런 죽음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무한차원에 던져진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