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원고를 수급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에이전시를 통한 원고 수급, 이는 국내에서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의 신작이나 미출간작을 검토하거나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외국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거나 화제가 된 책들 중에 선별하는 것. 두 번째는 국내에서 이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에게 출간 제의를 하거나 혹은 투고 형태로 원고를 받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기획이 선행된 후 이에 맞는 저자를 선택하여 원고를 청탁하거나 번역을 하여 출간하는 것이다. 「디 에센셜」은 기획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주제의 원고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디 에센셜 조지 오웰』의 경우, 나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 정도만 읽었고 그 외에 다른 에세이를 읽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구글링을 통해 연도별로 그가 발표한 작품들을 모두 정리한 후, 내용을 파악하고 주제에 맞게 분류를 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주제와 가깝다고 느껴지는 대표작과 에세이를 선별했다. 그 다음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담당 편집자를 통해 번역가 선생님께 이 도서의 기획과 콘셉을 설명드리고 우리가 고른 작품들이 적절한지, 혹은 더 적합한 좋은 작품이 있을지 도움을 구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은 조지 오웰의 여러 작품을 검토하여 '1984'라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봐야 할 에세이 작품들을 찾아주셨다. 그렇게 선택된 원고의 번역 작업 후 나 또한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만나볼 수 있었다.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시리즈의 첫 주자인 '조지 오웰'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가장 많은 애정과 공을 들여서 준비하고 살폈다.)
사실 처음부터 '조지 오웰' 작가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작가의 작품을 검토했고, 각각 번역가 선생님들께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들이 이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도 논의했다. 선생님들께서는 흔쾌히 원고들을 검토해주셨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의 작품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준비했던 세 가지 안이 모두 흡족스러워 모두 출간하기로 했다. (야호!)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한 권의 리커버 기획안이 세 권의 시리즈로 탄생했다. (야호!) 나는 이렇게 컨셉이 정해지고 원고가 정해져 번역되면 끝나는 줄 알았지.
책이 출간되기 마지막 순간까지 표지를 두고 고민하는 편집자들이 있다. 그럴 때는 마케터들의 의견을 묻곤 하는데, 대부분 편집자의 견해와 마케터의 견해는 무척 다르다. 왜냐하면 편집자는 이미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표지가 작품을 잘 표현해내는가를 중요하게 본다면, 마케터는 아직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독자가 처음 책을 마주하듯 눈길이 가는 표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서로의 시선을 조율하여 편집자가 최종적으로 표지를 결정한다. 사실 나는 지독하게도 미적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라 전적으로 디자이너의 감각을 믿기로 했는데, 그래도 한 작가의 세계관을 표현한 작품을 큐레이션했기 때문에 표지에 작가의 얼굴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런데 무언가 작가의 얼굴이 특별하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특별하면 좋겠는지는 모르겠다는 이상한 말도 함께)
그때 담당 디자이너는 초상화가 정중원 작가(『얼굴을 그리다』 저자)에게 표지 그림을 의뢰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매우 신박하고 무릎을 치는 아이디어! (역시 민음사 천재 디자이너들★) 정중원 작가님은 보통 실존하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남아있는 사진만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처음이지만 감사하게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렇게 번역과 함께 초상화 작업도 시작되었고, 조지 오웰의 흑백 사진이 아닌 생생하게 표현될 초상화 얼굴이 무척 기대되었다.
담당 편집자는 번역된 원고를 모아 교정교열을 하고 서체와 정렬 방식 등을 정하여 원고를 다듬었고, 담당 디자이너는 초상화 그림을 받아 표지에 시리즈만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여 디자인을 마무리했다. 사실 내가 상상했던 책의 구체적인 형태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그려왔던 것은 꽤나 화려한 표지였다. 이 책의 강점들 전면에 쓰여있고 화려한 색감들로 꽉 채워진 느낌? (대체로 마케터들이 원하는 스타일...) 처음에는 매우 심플한 표지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차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설득해나갔다. 하지만 난 미적 감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중재자인 편집자의 의견이었다. "시리즈로 책을 내려면 통일된 디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고려하면 너무 많은 요소들이 들어간 표지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히려 단순하고 간결한 것에 눈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의견을 받아들였고, 담당 편집자의 말이 맞는지는 독자 분들이 가장 잘 아실 것 같다.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각자 자기 업무의 전문성이랄까. 물론 나도 업무를 하면서 타 부서와 협업을 할 때 '마케터로서의 내 전문성을 인정해달라, 나도 당신의 전문성을 인정하겠다.'라는 마음과 태도로 임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진짜 전문성. 그들이 정말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의 아이디어와 실력을 낼 수 있는 전문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나는 내가 마케터여서 너무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마케터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각 서점별 판매량을 체크하는데, 나도 모르게 '디 에센셜' 판매량을 가장 먼저 확인하며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편집자였다면 매일 울었을지도...)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와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는 다음 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태태는 또 일희일비하며 눈 뜨자마자 판매량을 보고있을터이니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