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즘] 전략적인 인성으로 화합을 도모하는 사람들
몇 년 전에 아주 인상적인 고객사 교육 담당자 B를 만났었다. 같이 일해 본 매니저들은 하나같이 B의 인성과 일하는 모습에 칭찬이 자자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교육 파트너인 우리 매니저들에게도 매우 나이스 한 사람이었으며, 유순하지만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일에 대한 핵심적인 포인트를 잘 수행하는 탁월한 사람이었다. 또한 일하는 부서를 넘어, 조직에서 인정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어느 조직에서나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내가 지금껏 그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를 만나 본 본부장님의 코멘트 때문이었다.
"아, 정말 참 좋은 분이셔. 근데 정말 조직에 적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그 까다로운 김 부장님이 그분 칭찬하는 것 봤지?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
그렇다.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다른 칭찬의 표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B는 적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본부장님의 코멘트가 B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하게 된 표현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표현은 이후 아주 오랜 기간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조직 운영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요즘, 내 주변에 많이 떠오르는 표현이 되었다. 그렇다면 적이 없다는 뜻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둥글둥글하게, 좋은 게 좋은 거다하며 일처리 하는 사람에게 자주 쓴다. 누구에게든 비위를 맞춰가며 모두와 같이 좋게 생활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일하는 사람들과 싸울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사람이던지. 관계적 갈등이 싫어 아예 회피하는 사람도 포함될 수 있겠다. 나는 적이 없다는 것을 당시엔 그렇게 이해했다.
내가 오래 일한 것은 아니지만 조직 생활을 해 보니, 그것과는 다른 영역의 '적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주변의 사람들의 특성과 환경에 순응해서 대응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온전히 본인들이 취한 <전략적인 인성>이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해 보면,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의 쿠션이 있는 사람이며, 컨트롤할 수 없는 관계적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맞춤식 대응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문제를 유발한 사람이나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하며 모두가 화평하게 되는 것을 만들어낸다. 즉, 갈등과 문제를 증폭하지 않고, 수렴과 포용이 되도록 태도와 화술로 행동하는 전략가다. B에 대해서 '적이 없다'라고 표현한 것은 조직에서 그러한 역할을 전략적으로 수용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사기>나 <정사 삼국지> 같은 고전 속에서도 이러한 화평케 하는 자가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내가 본 피스메이커는 바로 '조자룡'이다. 그는 유비 밑에서 그의 측근들에 비해 인정은 좀 덜 받은 것 같다. 그런데 그는 피바람 나는 정치적 상황과 전투 속에서도 대의를 위한 화평을 실행했던 사람이었다. 특히, 나라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 제갈량과 함께 유비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측근들과의 화합과 외부(적)를 향한 결집을 위해 '적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의 주변엔 진정성과 매력 때문에 인재들이 몰렸다. 그리고 대의를 위한 사람들을 만들어 가며 묵묵히 유비를 섬겼다. 아집 때문에 살해당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배반한 측근들에 비해, 그는 말년까지 전쟁의 선봉을 산 실무형 리더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시간이 흘러 사람에 대한 학습을 하다 보니, 아마도 B는 상황에 따라 전략적 인성을 발현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B는 갈등 많았던 이전 담당자에게 교육을 이관받았다. 바쁜 일터에서의 학습자 입장을 포용하면서도 교육 담당자로서의 성과를 동시에 추구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전 담당자들과는 다르게, 교육 때마다 직접 참관하며 학습자들과 대화했다. 경청과 존중, 매너로 관계적 갈등 없이 교육을 이끌어 갔다. 결국 교육에 참여한 학습자들은 목표를 도달하였고, 만족하였고, B에게 고마워했다. 그전의 교육 담당자들은 학습자들과 싸우고, 서로 비난하여 교육이 아닌 재난이 되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B는 그 후 다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일하고, 국내 복귀해 그 조직의 중요 리더가 되었다.
조직 내에서는 누구나 자기의 입장과 상황이 있다. B에 대한 기억과 몇 년 간의 조직 생활을 돌아보니 진짜 지혜로운 것은 관계적으로 화평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화평은 서로 간의 손해 보는 것도 아닌, 양보도 아닌, 지혜의 결단이었다. 그 지혜의 시작은 문제를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하다 보면 일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당연히 있을 수 있고, 만만치 않은 공격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모두의 이익을 위한 포인트를 알고, 상대방 입장의 대화와 태도로 유연하게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지혜의 결단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노력들이 결국 모두의 마음을 얻는다. 정말 엄청난 스킬이 아닐 수 없다. 조직 속에 수많은 B를 존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