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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븐 Jun 09. 2021

당뇨가 나를 찾아왔다

<인생의 중간즘> 이젠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돌아가신 아버지는 본인이 당뇨인 것을 나와 동생에게 얘기하지 않으셨다. 술도 많이 드셨고, 담배도 많이 피우셨다. 원래 아빠들은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성인이 된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아버지는 결국 당뇨로 인해 합병증이 생겨 병원 생활을 하시게 되었고, 그때 당뇨의 무서움은 알게 되었으나 설마 내가 당뇨에 걸리겠어라는 생각으로 흘려보냈던 시간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30대 초반까지 주말마다 축구와 농구를 즐기며 건강하게 지냈다. 소위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피지컬>의 대명사였다. 적절한 체격에 웬만한 구기 종목은 모두 능숙했다. 운동하면서 사고도 난 적이 없었고, 병원에 한번 가 본 적도 없었다. 사회생활까지 건강하게 연결된 케이스였기에 병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던 30대를 보냈다.




이번 건강검진 결과에 상당히 자신감이 있었다.  끼인 옷을 감당할  없어 작년부터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고, A 도움으로 헬스도 등록해서 다녔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엔 집에서 꾸준히 홈트도 했다. 그에 대한 결과로 빠진 체중이  10킬로. 100킬로에 가까웠던 몸뚱이에서 10킬로를 걷어낸 것이다. 그래서 건강검진 결과의 수치는 향상된 숫자만 기대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내가 당뇨라니. 담당 의사의 선고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끝없이 밑으로만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인생의 중간에서, 40 중반에서 나는 황당하게 당뇨를 만나고 말았다.


내가 당뇨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이 질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당뇨는 만성질환이라 꼬리표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당뇨가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괴로웠다. 또한 작년에 살이 빠진 것이 운동의 결과가 아닌 당뇨의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도 화가 났다. 사회생활도 이제 어떻게 하는지 알겠고, 본격적으로 일해야 하는 인생의 중간에서 이렇게 당뇨가 나의 건강에 빨간 불을 누를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3개월간 약을 써서 당뇨 수치를 다스려 보자는 담당의사의 제안에 죄지은 사람처럼 수치심도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진단 이후 일주일은 평상시보다 더 빠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나는 어떻게 당뇨를 받아들여야 하며, 앞으로 난 어떤 삶의 변화를 만나게 될까 숙고하는 시간을 보냈다. 3개월. 시한부 선고 같은 이 숫자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철저하게 건강 모드로 바꿔보자는 결심을 했다.


잘 알려진대로 당뇨는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가 핵심이라고 한다. 유명 의사들의 유튜브를 뒤져보고, 여러 검색을 통해서 최신 정보들을 취합했다. 어떻게든 당뇨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하고는,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리스트를 뽑았다. 정말 놀랍게도 리스트를 뽑고 나니, 작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설탕을 먹었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잊기 위해 많은 양의 (정말 많은 양의) 자양강장제와 탄산음료를 먹었던 것이 당뇨를 부른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당뇨 선고받은 그날부터 설탕이 들은 음료는 100% 끊었다. 평일엔 최대한 피할 음식을 의식적으로 메뉴에서 제외했다. 취식할 음식에 대한 의식적 선택이 앞서다보니, 먹는 양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담당 의사의 권고대로 산책을 매일 꾸준히 하는 전략을 택했다. 출근 후 50분, 점심 식사 후 30분 회사 근처로 코스를 정해서 A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다. 초반엔 매일 1만 보가 버거웠으나 주말에도 걷고 움직였더니 훨씬 수월해졌다. 7살 아들을 꼬셔서 주말엔 집 뒤에 있는 자락길을 함께 걷는 시간도 정했다. 산책으로 얼마나 운동이 될까 의심도 들었으나 무리하지 않는 정도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산책을 권장한 담당 의사를 믿고 따랐다.


 당뇨가 나를 찾아온 후 적용된 변화를 통해서 3개월 뒤 당뇨 수치는 정상 범위에 가깝게 호전되었다. 담당 의사도 권고 잘 따라 주어서 좋은 수치가 나온 것 같다며 칭찬해 주었다. 당뇨를 위한 운동과 식단 관리가 확연히 컨디션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몸이 이전보다 가볍게 느껴졌고, 산책을 통한 운동으로 정신적인 여유도 챙기고 업무 몰입도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 당뇨로 인해 추구한 건강 모드가 여러 가지 사이드 이펙트를 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당뇨와는 지속적인 전쟁이므로 앞으로 6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즉, 6개월이라는 시간을 2차로 유예받은 셈이다. 당뇨를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3개월이 의미가 있으려면 앞으로 6개월도 더 노력해야 한다. 그래. 노력한 3개월간의 경험으로 앞으로 6개월은 더 철저하게 건강 모드를 추구해서 더욱 건강해지자. 당뇨라는 육체적 빨간불을 적절히 켜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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