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생 Feb 17. 2016

나는 먹기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생활의 주체권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있다

7년전에 영화인 앤티크에서 이다도시(?)가 이런 대사를 했다.

"먹기 위해서 헬스한다"



우리는 예쁜 옷을 입고 좋은 신발과 어울리는 안경을 쓰고 멋있게 단장을 한 후에 누군가의 앞에 간다.

혼자만의 공간에 있다면 잘 그러지 않는다.

우리는 한 단계의 손질한 존재를 "나"라고 한다.


나는 이미 벌써 나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을 시에 굉장한 괴리감에 불안해하고 싫어한다. 부정한다.


맛있는 것을 먹는 그 자체를 즐겁게 여기지만 우리는 그것을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마냥 

더 예쁜것

더 아름다운 것

더 멋진 것을 외친다.



의식주는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줘야하는 유지 조건들이다.

산다면 필수 불가결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더 본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예쁜 옷을 입기 위해, 좋은 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저 말은 TV광고에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지 않는가?


어느새 우리는 소비의 선택권이 아니라 더 본질인 생활의 주체권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있다.

이럴때일수록 근신하고 기민해야 한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작가의 이전글 앞으로 귀성길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