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뜻하는 대표 영단어는 ‘travel’입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우선 고대 프랑스어‘travail’에서 유래한다는 주장. 이때 ‘travail’은 일이나 노동을 뜻합니다. 혹은 중세 때 사용하던 영어 ‘travailen’에서 유래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travailen’은 ‘travail’로 아직까지 쓰이고 있는 단어인데, 고통이나 고생을 뜻합니다. 의외죠? 둘 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노동과 고생은 상통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되지만요.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이 두 단어가 동일한 어원에서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라틴어 ‘trepalium’에서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고대 로마 군대가 사용하던 고문 장치라고 합니다. 구글에서 ‘trepalium’을 검색하면, 프랑스의 데스 메탈 그룹이 가장 먼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기괴하게 생긴 일러스트레이션도 몇 컷 등장합니다. 그리 낭만적인 의미는 아닌 거죠.
여행이 왜 고문 기계였는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겠네요. “고대 로마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제국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고 해봤자 말이나 당나귀다. 그것도 몇몇 귀족이나 군인이 탈 수 있었지 대부분의 사람은 걸어가야 했다. 징집된 노예는 끌려가다시피 걸어가야 했다. 수천 킬로미터를 몇 개월 걸어가야 하는데 누가 좋아할까. 또한 군대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말 안 듣는 노예를 고문했다. 가다 지쳐 쓰러진 노예도 고문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때는 집 떠나 멀리 일하러 가는 게, 여행이 아니라 고통이었고 고문이었다.”라고요.
한편, 한자어 ‘旅行’은 훨씬 정리하기 쉽습니다. ‘나그네나 군대가 다니다’로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물론 여행은 아주 쉬운 게 아닙니다. 시간을 내서 계획도 짜고 예산도 마련하고 짐도 싸야 하니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해 고생할 수도 있고요. 저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자면, ‘이게 웬 사서 고생이냐’라고 후회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래도 여행은 그런 고난쯤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죠. 되려 바쁜 일 때문에 여행을 못 떠나는 게 고문이라 할 정도로 말이죠.
-201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