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도 있지만, 낭만(浪漫)만큼 애매모호한 단어도 드뭅니다. 이 단어는 원래 프랑스어 roman에서 유래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roman에서 음만 취해 ‘浪漫’이라고 썼고 그게 한국에 건너와 굳어진 것이죠. 물결 랑(浪)에 가득할 만(漫). 국어사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 이렇게 풀어놓아도 낭만의 뜻을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네요. 다만, 일상에서는 거두절미하고 주로 ‘감미로운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 사용하는 듯합니다.
교토에 벚꽃이 지면, 가모가와(鴨川)에 반딧불이 빛난다고 들었습니다. 여름을 알리는 신호라고 합니다. 한데, 이번에 처음 여름의 교토를 방문했을 때, 강을 따라 또 다른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교토의 여름 명물 납량(納涼) 유카(床, 상) 때문이었죠.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강을 향해 만들어놓은 주점의 야외석을 가득 메웠어요. 에도 시대 초기부터 교토 사람들은 여름 더위를 피해 강변에 상을 펼치고 유흥을 즐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참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이른바 유원지라고 하는 곳에서 계곡을 따라 늘어선 음식점의 평상 자리가 저절로 생각났으니까요. 독자 여러분도 거기에 앉아 땀을 식힌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물이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가끔 식사와 술을 곁들이면서 말이죠.
오래된 다리 난간에 기대어 가모가와 주변 풍경을 보자 낭만이 떠올랐죠. 물결(浪)이 출렁이는 천변에 불빛과 사람, 웃음이 가득(漫)한 모습이. 문자 그대로 낭만이었습니다. 여름 하늘은 서서히 보랏빛으로 물들어 비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여름 풍경 같았어요. 퇴근 후 바삐 걸어가는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내도,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는 아이섀도를 바른 여인도 여름 저녁과 참잘 어울렸습니다. 거리의 음악가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어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문자 그대로, 낭만처럼요.
-201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