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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h KIM May 08. 2016

눈을 보듯이

하늘을 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사람이 아닌 하늘을 보고 있다. 어쩌면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는데도 나라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의 테이블엔 따뜻한 어묵탕 하나와 내용물이 텅 빈 소주 2병 그리고 아직 반이 남은 한병의 소주가 있었다. 당신과 나 각자의 소주잔엔 넘칠 듯이 소주가 담겨 우리 머리 위에 어렴풋이 흔들리던 전등 빛을 고스란히 머금었다. 우리에게는 건배 따위는 필요치 않았으므로 각자의 술잔은 온전히 자신의 몫 시였다. 한잔을 한 번에 마시는 나와는 다르게 당신은 소주잔에 소주를 두세 번에 나누어 천천히 마시는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술을 마시는 걸 보면 나에게 그러다 취하면 버리고 간다고 웃으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에게 취해서 꼴사나운 모습을 서로에게 보인 적은 없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당신은 술잔에 다시금 소주를 채운다. 술잔에 술이 차오르는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항상 밤하늘에 달을 떠오르곤 하였다. 아마 그 당시 나는 밤하늘을 보는 날이 많았을 테다. 하늘을 보며 달이 차오르는 모습을 기억했을 테고 그 기억은 이따금 술잔 속에서 피어오른다. 당신은 앞에 놓인 술잔을 한동안 손으로 어루만진다. 그리곤 한잔의 소주를 입안에 한 번에 털어놓고는 술잔을 손에서 놓지 않은 체 나를 보며 이런 물음을 던졌다.


"우리가 무슨 사이야..."


나는 내 술잔에 술을 채우는 중이었음으로 술잔에 술이 차오를 때까지 당신을 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지 않았으나 당신은 나에게 물음을 따라주었다. 그 물음은 그 어떤 술보다 쓴 술이었을 거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저 내 앞의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당신의 눈을 보았다. 내 앞의 술을 비우기 전 나는 당신이 따라준 질문을 삼켜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답을 따라주어야 우리는 공평해진다.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물을 필요가 없는 친구사이"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건네 질문보다 쓴 답을 따라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술잔에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술이 쓰다. 써서 한 번에 전부를 삼키지 못하고 나는 한 모금 만을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는다.

당신은 내가 따라준 답을 전부 마신 걸까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당신은 웃으며 한 모금만 마신 내 술잔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역시나 우린 서로의 술잔 같은 관계네"


당신은 그 소주를 마셔야만 그 물음을 따라줄 용기가 생겼을 거고 난 결국 당신에게 답을 따라주고 나서야 내 술잔에 술을 한 모금 넘길 수 있었다. 이따금 밤하늘을 보며 달을 본다. 별들은 무수히 많기에 무엇을 봐야 할지 나는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므로 하늘에 하나뿐인 달을 본다. 술잔에 차오르는 술을 보며 달을 떠올렸고 달을 보고 있으면 나는 누군가의 눈동자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친구일 때도 있고 좋아하던 사람 일 때도 있다. 그리고 이따금 달은 당신의 눈동자일 때가 있다. 그날 나는 아마도 당신의 눈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던 거 같다.

달을 보는 만큼 사람들이 눈을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당신 때문에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과 나는 이따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각자의 술잔이 되어 술을 채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당신은 나에게 웃으며 흉을 볼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각자의 술잔에 한두 번 술을 채워주는 것.


그리고 눈을 보듯 달을 보지 말고 달을 보듯 사람의 눈을 보았다면 좋았을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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