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아는 자,
그 자리를 떠날 권리

— 레프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 박건형 배우의 목소리로 듣고

by 생각의 여백

사유는 머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눈앞의 장면이 그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낼 뿐이다

세상은 모든 일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고, 그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게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이란, 사실 어떤 우연을 만날 확률에 노출되어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박건형의 목소리로 《무도회가 끝난 뒤》를 들으며 이 확신은 더 짙어졌다. 주인공 이반이 사랑에 도취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 처형장을 지나친 것은 철저히 확률의 문제였다. 누군가는 평생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을 그는 ‘우연히’ 보아버렸다. 그리고 그 목격 이후, 그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사유는 머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눈앞의 장면이 그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낼 뿐이다


사실 이 이야기가 이토록 진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허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형의 실제 연애 경험에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대목을 생각하면, 이반의 선택은 한 편의 소설이라기보다 실제 삶에서 길어 올려진 고백처럼 다가온다. 이반은 대학생 시절, 우아한 바렝카 B 양에게 반해 온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던 사랑의 도취 속에 있었다. 그 황홀한 취기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새벽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휘두르는 매질을 목격한다.


레프 톨스토이는 이 짧은 이야기에서 악인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무도회장에서의 대령은 교양 있고 다정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새벽 처형장에서 그는 병사를 잔혹하게 구타하는 지휘관이 된다. 얼굴이 변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를 움직이는 이름이 사랑에서 ‘의무’라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톨스토이가 겨냥한 것은 개인의 잔혹성이 아니라,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스템과 그 안에서 무감각해지는 인간의 양심이었다.


이 장면은 2024년 12월의 어느 겨울밤과 겹쳐진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사표를 던지고 회의실을 나섰던 한 공직자의 모습. 그 역시 처음부터 저항자가 되려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우연히 호출을 받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연은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목격 이후 인간은 홀로 남는다.


이반은 그 장면 앞에서 분노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낀다. 가해자는 확신에 차 있는데, 지켜보는 이가 시선을 둘 곳을 몰라 고개를 떨군다. 이때 이반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대령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억지로 납득하지 않는 것. 그들의 논리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채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다.


그래서 그는 떠난다. 우리가 이반의 떠남을 비겁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싫은 세계만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과 미래까지 함께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과 결별했기에 그의 발걸음은 도망이 아니라 고백이 된다.


떠나는 것이 언제나 용기일 수는 없다. 어떤 떠남은 회피이고, 어떤 떠남은 존엄이다. 그 경계는 떠난 이후의 마음에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잊기 위해 떠나는가, 아니면 잊지 못한 채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가. 불편함에서 도망치려는 떠남은 기억을 지우려 하지만, 존엄으로서의 떠남은 오히려 그 장면을 평생 마음속에 남겨둔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시스템이 개인을 삼킬 때 사용하는 가장 비겁한 변명이다. 우리 역시 각자의 ‘처형장’을 목격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분노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내 욕망까지 함께 들여다본 끝에 내린 선택이라면 그 떠남은 비겁함이 아니라 방향이 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확신으로 굴러가는 세계 앞에서, 끝내 그 일부가 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이다. The power to refuse being part of a world driven by incomprehensible convictions is our final shred of dignity.(26.1.31)

ChatGPT Image 2026년 1월 31일 오후 05_25_56.png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화풍으로 AI(GPT)가 재해석한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뒤》의 새벽 장면




작가의 이전글사리를 아는 사람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