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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태웅 Mar 08. 2016

아니, 한국에는 미니멀리스트가 없나

이 땅에서 심플하게 사는 사람, 여기있습니다만.

한국의, 평범한, 그런 미니멀리즘 없나


    우선, 이 글은 미니멀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쓴 글이 아니다. 라이프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매거진을 기획했으면서 첫 글부터 왜 이러나 싶지만, 여는 글인 만큼 이 브런치의 컬러를 확실히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 매거진에 실릴 글들의 방점은 ‘한국’에 찍힌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직접, 한국에서’ 시도해보는 심플한 생활이다. 그러니까 이 매거진 속 일련의 글들은 여타 미니멀리즘의 글보다 좋게 말하면 밀착/생계형이고 구리게 말하면 시시하고 없어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독자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 청소가 싫고 생활비에 쪼들려 산다. 부모님은 다 먹지도 못할 반찬을 자꾸 자취방 냉장고에 담아주신다. 내 미니멀리즘은 이런 시시한 것들과의 싸움이다. 벌써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거로 가닥이 잡혔는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일본산, 미국산 미니멀리즘 소개물


    아이고, 그놈의 미니멀리즘... 필자도 수많은 사람과 비슷하게 접했다. 유행처럼 한국으로 번진 일본산, 미국산 미니멀리즘을 TED든 책이든 나름대로 보고 읽는다. '올…ㅋ 괜찮은데' 다만, 필자는 ‘할 만하다’와 ‘하고 싶다’의 양자에서 ‘하고 싶다’를 택한 많지 않은 괴짜였다. 그 다음은? 여러분이 이 브런치를 찾은 경로와 비슷하게, 네이버나 다음에 “미니머ㄹ…”이라는 검색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까지 이룰 일은 아닌, 이 미니멀리즘과 씨름한 지도 1년가량 지났다. 이 브런치는 그동안 들었던 생각이나 경험담을 싣고, 나아가 오늘을 사는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도 담을 생각이다.



    방점 찍힌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미니멀리스트와,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그 문제는 이 땅이 대한민국이라는 데에 있다. 심플라이프라더니, 문제점마저 심플하다. 미니멀리즘 관련 서적을 읽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가능? 나보고 중이 되라는 소리인가’. 유명세를 탄 저자들의 블로그는, 혼자 사는 집에 침대 하나밖에 없고 옷장은 똑같은 린넨 셔츠 4벌만 걸려있다더라. 하지만 여기는 어디인가? 오백에 삼십은 어느새 옛말이 되어, 캠퍼스나 역세권 자취방은 천에 오십도 쉽게 뱉는 그런 곳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만 원 이상의 메뉴만 먹어도 빨리 인스타에 자랑하고 싶은, 좋아요 개수를 헤아리는 남들의 눈치를 보고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이즘ism 자체에 종속되지 않는 것



    맞다. 미니멀리즘은 버리는 것에 대한 철학이다. 버리고 또 버린다. <소유물에 종속되지 않는 나>는 굉장히 멋진 말이지만, 우리가 스님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매달림은 피할 수 없다. “애쓰지 않는”이라는 문구로 스스로를 소개하길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의 내 주변과 내 내면의 심플한 삶보다 중요한, 밥벌이나 육아, 학업이나 취업이 있다. 단체행사에서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있다? 입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내 옷장은 똑같은 린넨 셔츠 4벌로만 구성되지 않고 경조사용 정장도 있고, 맨투맨도 있고 기본적인 셔츠도 있다. 혹자는 이런 미니멀리즘을 시시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내 미니멀리즘이 이즘ism 자체에 종속되지 않길 바랐다. 모든 걸 버린 뒤 텅 빈 집을 인증샷 찍는 게 목표가 아니다. 버림을 통해 삶의 잡다한 고민이 줄어드는 선에서 그친다면 나는 과감하게 버림을 그친다. 그래서 옷장에는 비운다고 비웠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옷들이 있다. 다만,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줄였을 뿐이다.



나는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노트북 하나로 근무하는 글로벌 피플도 아니고, 은퇴 후 홀로의 연금을 받으며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황혼기도 아니다. 출퇴근이 있고 술자리가 있고, 자기계발 시간은 여전히 쪼들리는 평범한 한국 사람이다. 이게 내 미니멀리즘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여러분의 미니멀리즘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 담아 보낼 나의 심플라이프는 결국,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는’ 심플리즘이 될 것 같다. 솔직히, 이 나이에 이 땅에서 마련할 수 있는 심플함이란 이 정도 선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나 역시 글이라도 쓰면 양심상 좀 덜 게을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얌체 같은 발상 때문이다. 마침 인터넷을 뒤져보니, 미니멀리즘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한국의 평범한, 생계형 미니멀리즘’을 다루는 사람이 딱히 없어 보였다. 거기에 평범한, 생계형 미니멀리스트 하나가 슬쩍 발을 담궜으니 이 심플라이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살며시 구독을 눌러보시라. 이제 미니멀리즘에 대한 필자의 생각부터, 한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미니멀리스트’로 변하는 과정을 써볼 생각이다.그러니까구독좀







삽화

프란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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