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지만, 영어 발표가 항상 어려웠던 이유
의료센터의 한 대학원 프로그램에 입학했을 때, 나의 영어 말하기는 매끄럽지는 않지만 전달해야 할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점차 공부해야 할 의학 용어가 늘어나고, 연구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구체적으로 발표해야 할 내용이 많아지자, 전달해야 할 내용들이 뒤섞이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 일쑤였다.
학기 말이 다가오면, 수업이나 연구활동에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발표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프로젝트 전체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꽤나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다.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나치거나,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변 개념까지 차례대로 설명하다 보면, 나의 발표는 너무 빨리 끝나버리거나,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곤 했다. 나의 발표가 시작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나의 시선은 대중을 향하기보다는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의 행간을 따라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나의 발표 내내 고통을 받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누군가 손을 들어서 질문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을지라도, 나는 모른 채 발표를 이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발표의 목적은 듣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가능하다면 설득시키는 일인데, 나에게는 준비한 정보를 주어진 시간 안에 완벽하게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시간이 흘러, 발표를 할 때, 슬라이드를 쳐다보는 시간과 대중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시간의 비율이 7 대 3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발표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주변 대학원생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주로 그들의 반응은 “You did a good job.”이거나 “Not bad” 정도였다. 발표를 마친 것을 형식적으로 증명하는 것처럼, 혹은 부정적인 표현을 하기 싫어서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발표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그 누구도 나의 발표의 어떤 특정 부분을 집어서 의견 교환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학원에서의 발표가 이렇게 엉망인 것에 대한 원인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학부 생활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던 나는 분명히 사람들과 매일 같이 소통했고, 모든 수업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학사과정 내내 프레젠테이션을 몇 번 했는지 가늠해보았을 때, 어느 정도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1학년 때 들었던 영어 교양과목에서 한 프레젠테이션들을 제외하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횟수가 적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운 과제의 완수 및 제출이 주요 목적이었던 컴퓨터 과학과의 과목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남들에게 말로 명쾌하게 표현하는 것을 제1 목표로 생각하지 않았다. 창의력과 문제풀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생각하는 문제의 답을 프로그래밍 언어와 영어를 써서 채워 넣고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주변 학우들과 의사소통하는 내용도 정해진 주제 속의 기술적인 문제풀이에 한정되어 있었고 전문용어는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배운 것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방식대로 전달하는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발표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라고 결론지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시행했던 발표 횟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동안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어색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어색함은, 내용을 꼼꼼하게 전달하기 위해 슬라이드를 읽는 것이 내용을 다소 덜 밀도 있게 전달해도 청중을 바라보고 말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발표를 하는 도중에 누군가 내가 정답을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면, 억지로 답을 하기 위해 끼워 맞추기 식 답을 하기보다 쿨하게 “I don’t know.”라고 답을 하고 태연하게 원래 발표 내용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수업 중에 질문을 못했던 경험이 있는데, 나의 발표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은 더욱 기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나만의 전공인 컴퓨터 과학에 갇혀서, 여러 분야의 교류가 고차원적으로 일어나는 의료 시스템 속 청중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학부 신입생 때부터 당연하게 써 오던 컴퓨터과학 속 용어가 의료센터의 누군가에게는 생전 처음 들어 본 단어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청중 중에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질문하거나, 발표 후에 여러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다 보면 상대적으로 쉽게 ‘나만 아는 컴퓨터과학 용어’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난해한 경우는 컴퓨터 과학에서 A라는 뜻의 한 용어가 의학의 어떤 한 분야에서 B라는 의미로 쓰일 때였다. 나와 청중은 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생각하며 발표 중 공유했던 용어가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한다면, 뜻을 잘못 전달되었지만, 잘못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약간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발표 경험을 쌓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노력을 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첫 번째 문제의 해결책은 전체적으로 대화의 양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점부터 문자보다 전화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짧은 대화라도 누군가와 한마디라도 더 하는 것이 나의 발표 중 어색함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문자가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일상 속 짧은 문장을 만들고, 그런 짧은 문장들이 나의 발표 곳곳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일상적인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발표 중 청중과 나 사이의 어색함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청중에게 말하는 것이 나와 청중 모두가 편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의 해결책은 발표 전에, 컴퓨터과학에 대해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 컴퓨터과학 속 전문용어를 기술적이지 않은 용어를 이용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난도는 높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저널리즘 전공인 동생에게 발표에 쓰일 주요 컴퓨터과학 전문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여러 뱡향의 설명 끝에도 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은 발표에서 제거하고 다른 이해하기 쉬운 용어들로 대체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느꼈던 것은 전문용어의 비율이 높다고 해서 나의 발표가 전문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문용어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의료센터 속 누구라도 나의 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 발표가 진정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