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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MDJAI Nov 17. 2019

수능과 SAT

정시 확대를 무조건 동의할 수 없는 이유 

     매년 한 번씩 찾아오는 수능은 다음 기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수험생과 수험생의 가족들이 수능날은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긴장되는 날이다. 모두가 긴장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날이라서 그런지, 수능날의 온도는 평소보다 뚝 떨어진다. 

     수능 모의고사와 미국 대학 입학시험인 SAT를 본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수능은 어렵다. 수능 시험문제의 난이도가 SAT보다 높다는 말뿐만 아니라, 수능 시험의 구조와 규칙도 고등학생들에게 너무나 어렵다. 수능과 SAT의 차이를 살펴보기 전에 내가 어떤 과목 조합의 수능 모의고사와 SAT 시험을 봤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과였고, 수리 가형과 과학탐구 과목들을 골라서 수능 모의고사를 봤다. 수능 모의고사를 볼 때 내가 선택한 과목은 필수과목인 언어, 외국어 두 과목 (영어와 제2 외국어인 독일어 포함), 수리 가형, 화학 1, 화학 2, 물리 1 그리고 생물 1이었다. 반면에 SAT 과목들을 준비할 때, 기본 과목이 SAT1 (Math, Critical Reading, Writing, Essay)과 SAT2의 Math 2, Chemistry 그리고 Physics였다. 현재 SAT1은 형태가 바뀌어서 Math와 Reading/Writing 두 과목 그리고 선택적인 Essay 시험이 있다. 

     한국 대입시험 수능과 미국 대입 시험 SAT의 과목들을 펼쳐 놓으니 대충 봤을 때, SAT 1 과목이 Math, Critical Reading 그리고 Writing은 수능의 언어, 수리와 매칭이 되고, SAT2 과목의 Math2, Chemistry 그리고 Physics는 수능의 과학탐구와 비슷한 과목처럼 보인다. 여기서 수능과 SAT의 결정적인 차이는 수능은 매년 정해진 하루 만에 시험을 끝내야 하고, SAT1과 SAT2 시험들은 다른 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입의 언어와 수리와 매칭 되는 SAT1은 1년에 시험을 볼 수 있는 달이 여러 번이고, 너무 많은 횟수의 시행은 지양해야 하지만 두 번 혹은 세 번까지도 볼 수 있다. 원하는 달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SAT는 1년 중 정해진 하루 동안 모든 과목을 몰아서 보게 만드는 수능에 비해 학생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훨씬 경감한다. 누군가는 1년에 대입시험을 여러 번 시행하면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지만, 1 년의 하루만 대입시험으로 못 박는 것 또한 다른 상황에 있는 수험생들에게 공정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수능의 수리와 SAT의 Math 과목을 비교하자면, 수능의 수리 가형은 기본 형태의 행렬, 통계, 미적분, 이산수학, 대수, 기하 등의 문제들이 뒤섞여서 나오고, 각 분야의 개념을 알고 직관적으로 풀기보다 암기한 공식과 복잡한 응용을 이용해야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기하에서 삼각함수 부분이 출제되는 경우, 공식을 떠올리지 않고 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SAT는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SAT2의 과학 과목 같은 경우에, 각 문제들이 화학이나 물리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서 출제되지만, 각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으면 풀 수 있는 반면에, 수능의 화학은 문제 속 각 문장에 대한 해석을 비롯하여 문제에 주어진 실험이나 가설 상황을 깊게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SAT2 화학의 전반적인 주제들에 걸쳐 넓은 범위의 상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답을 얻어내기 쉬운 반면에, 수능의 화학 시험은 기본적인 암기 외에 특정 문제 유형을 풀어내는 훈련이 필요했다. 

     여기까지 보면 수능은 문제는 어렵고 시험 날짜 배정에 유연하지 못한 고집불통 같은 느낌의 시험이다. 누군가는 미국 교육은 원리의 이해를 중시하기 때문에 SAT 시험이 수능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국의 시험이 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문제의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도 더 적절한 유형의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에서 상위 수학 전공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하면서, 복잡하고 때로는 심오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수학 이론 과목들을 거치면서 들었던 생각은 수능 수리를 공부하는 것처럼 혹은 수능 수리보다 더 어려운 개념들도 미리 공부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돌아보니, 어렵게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을 경우도 많았고, 원리 이해 위주로 가르치는 미국의 수학교육이 어쩌면 미국 학생들을 어떤 수준에서 가두어 놓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수능과 SAT 시험의 시스템이 합쳐질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인 형태의 시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입시험을 볼 수 있는 횟수는 SAT처럼 1년에 한 번 이상의 시험 기회를 주는 대신에, 난이도는 수능에서 출제되는 어려운 문제들까지 포함해서 시험의 변별력을 높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의 수험생들은 1년에 한 번인 수능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우리나라의 수험생들이 더욱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험 시스템 안에서 본인의 실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불공정함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대학입시 정시 확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덧붙이면, 현재 1년에 한 번 시험을 볼 수 있는 시스템에서 수능으로만 대학생을 뽑는 방식을 확장하는 것은 미래의 수험생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수능과 대안이 될 수 있는 시험 제도가 마련되거나, 수능을 1년에 볼 수 있는 횟수를 늘리는 등의 제도 상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면, 정시 확대는 또 다른 혼란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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