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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문법

by 아무개


나는 당신의 슬픔을 훔쳐 입었다

투명한 옷처럼, 빛이 통과하는


물은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물은 모든 것을 배반한다, 부드럽게


당신이 떠난 뒤

방 안의 공기가 문법을 잃었다

주어와 술어 사이에

검은 틈이 벌어지고

그 틈으로 새들이 날아갔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거울처럼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동시에 지우고 있었다

입술 위에서 증발하는

물처럼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그림자는 이미 하나였다

길 위에 흩어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당신이 말했을 때

나는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버릴 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과거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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