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문장은 울고 있다

by 태연

나는 내가 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잠시 멈춘다.
그 문장은 내 것이지만,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글은 한때의 나로부터 태어나, 이제 자기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 길이 다정한 독자를 만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손에 닿기도 한다.
그제야 나는 안다. 이제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울림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문장이 내 이름도, 내 이야기도 지워진 채 닿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처음엔 놀라고, 그다음엔 화가 치밀겠지.
그러나 끝내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이니까.

하나의 단어를 고르기 위해 그날의 감정과 마주서고,
하나의 표현을 위해 오래 묻어둔 상처를 꺼낸 나날들이니까.


저작권은 법이기 전에 예의다.
사람들은 창작을 가볍게 말하지만, 진짜 창작자는 안다.
글은 종이에 남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새겨지는 것임을.
어떤 문장은 그저 정보지만, 어떤 문장은 꺼내어 내민 나 자신이다.

나는 늘 묻는다. 글이란 무엇인가.
내가 써내려간 이 문장이 언젠가 누구에게 닿을 때,
그건 내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전해지는 작은 떨림이다.
그 떨림이 흐트러지지 않기를,
나의 말을 나의 이름으로 기억해주기를, 나는 바란다.

저작권을 등록할 때 나는 문서를 넘긴 것이 아니다.
숨결 한 줌, 그때의 나, 손 닿을 수 없는 마음 하나를 내어놓았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을 내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잠깐 빛났던 감정들, 지나간 시간들,
상처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작고 투명한 성장들.
‘부디 다정히 받아주기를’ 속으로 빌며 나는 그것들을 내어보냈다.


우리는 이제 기계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쉽게 복제하고,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는 다르다.

나는 AI가 쓸 수 없는 것을 쓴다.
내가 살아낸 시간의 밀도, 나만이 느낀 고통, 나만이 바라본 풍경.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남는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잠시 멈추어 돌아보게 했다면,
그건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안에 진심과 존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그 진심이 존중받을 권리다.
타인의 글을 인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억이다.
그 글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그 여정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창작이란 내면을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다.
저작권은 그 내면이 함부로 다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지막 울타리이자, 독자의 첫 번째 배려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한 문장.
그건 누구의 시간에서 왔는가.
그 문장이 당신에게 의미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그것은 삶의 전부였음을.

기억해주기를.


이름 없는 문장은 울고 있다.
그 울음이 닿기를, 그 울음이 이름을 되찾기를.
나는 오늘도 한 줄의 문장을 건넨다.

작가의 이전글영복 씨의 딸, 태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