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충분히 애달파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12.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축복의 길이니.

by 태연

죽음은 헤어짐의 착각 속 슬픔을 알고자 하는 환상이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축복의 길이라.


죽음의 슬픔을 없애고자

죽음의 아픔을 없애고자

죽음의 고통을 없애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알았으면 한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만 알았으면 한다.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다만 알았으면 한다. 죽음의 진정한 삶의 의밀.



|죽음은 환상이다

영혼에겐 죽음은 없다. 우주에서의 무한한 존재이며 우주에서의 영혼은 무한한 확장 속에 있을 뿐이다. 다만 육체를 입은 나는 현생에서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원함 속에선 알 수 없는 오직 제한된 삶에서 끝을 느껴보려 한다. 인간의 생은 영원하지 않으며 한 생에서의 인격은 삶의 마감에 의한 끝을 반드시 맞이한다. 우리는 끝이 있기에 살아서는 알 수 없는 그 이후에 대한 두려움에 영원성을 욕망하며 영원성을 갈구해 왔다. 인간으로 물질의 불멸의 존재가 되길 원했고 환상 속 시간을 지배하려 애써왔으며 행복한 삶의 순간이 변치 않길 바라왔다. 이는 육체적인 생존본능에 따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바탕에 내재된 근원의 영원성으로 인해 끝을 초월하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웠다. 죽음이 두렵다. 생에 태어나 죽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건만 그 이후의 세상을 산자는 볼 수 없기에 더욱 겁이 났다. 죽음 이후의 자신의 존재여부, 그리고 천국과 지옥... 과연 어떠한 삶이 어떠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 우린 변화를 겁내는 세상에서의 고약한 이기적인 잣대로 사람을 삶을 평가하고 그로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간다 믿기에 천국보다는 지옥에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죽음, 무지의 두려움으로 죽음을 어둡게만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지옥을 만들어 겁을 준 종교들의 횡포와 이를 유포한 물질세상에 탓을 해볼까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죽음을 오직 끔찍하리 만큼 섬뜩한 공포의 두려움으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로 인해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나의 완전한 소멸 혹은 지옥을 의미했다.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형성된 육체적인 자아, 이를 나와 동일시하기에 나를 온전히 육체로만 생각하였고 이로 더욱더 우리의 죽음은 혼자되는 분리로 무서웠고 이별에 아팠으며 슬펐고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된 감정들로만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애달프게도 말이다.


이제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닌 완전한 근본인 영원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선언하겠다.

이제 죽음은 지옥이 아닌 천국의 문이라 선언하겠다.

이제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선언하겠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출발이며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통로이자 길이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사후의 나의 존재여부 그리고 죽음 이후에 생... 죽음은 끝이 아니니 이는 영원하다. 고로 우리의 존재도 영원하다. 우리는 현생을 끝으로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혹은 다른 차원계에서 에너지로만 머물 수도 아니면 다른 행성에서의 삶을 살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죽음 이후의 우리의 영혼으로써의 삶은 무궁무진한 다양한 선택사항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어떠한 삶을 살지 그것은 오로지 나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나의 선택으로 정해진다. 영원한 존재인 우리는 우주와 함께 계속적인 확장을 이뤄나가는 재미난 놀이터를 창조하고 이러한 오락세상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오로지 나의 그대의 우리의 모두의 하나에서 분리된 채 전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존재하는 무수한 사건들을 통해 성장하는 즐거움, 배움의 기쁨 그리고 다양한 사랑 등을 경험하는 모두의 나들이 동시에 새로운 나를 재창조하며 확장을 통한 팽창을 하는 과정 중에 우리 모두는 하나로 함께 하고 있다.

가짜인 세상, 하지만 진짜인 이 세상. 내가 만들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내가 만들고 있지만 그것 또한 인지하지 못하니 참으로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러하기에 온전히 인간으로의 나를 완전히 체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영혼인 나는 나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실을 망각으로 이 생에 태어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죽음의 이유

더 이상 죽음으로 무서움에 떨지 마라.

더 이상 죽음으로 애달프게 울지 마라.

더 이상 죽음으로 그리움에 목메지 마라.

인간으로 죽음에 대한 가장 궁금했던 세 가지는 죽음 이후에 삶과 죽음 이후에 나의 존재여부였다.

그리고 애설픈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유. 이로 우리는 괴로웠고 이로 우리는 애달팠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죽음을 통해 기쁨과 슬픔이 섞인 사랑의 눈물을 흘리리.


죽음 이후에 삶은 위에서 언급한 거와 같이 영원으로 존재하며 우리들은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선택들 중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새로이 삶을 시작한다. 물론 우주에서의 모든 내가 가진 다양한 삶들의 경험을 기억하는 삶을 선택하거나 현생에서의 못다한 배움을 채우기 위해 또다시 망각한 인간 세상에 태어나길 원하기도 한다. 지구별에서의 환생을 선택했다면 이번 생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대략적으로 구상해 전체적인 테마를 설계하고 나의 부모가 될 영혼들과의 합의하에 가족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내 생을 함께하기로 한 모든 영혼들과 인생에서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사건들을 모의하고 협의하여 결정한다. 물론 인간으로 태어나면 그 모든 기억들은 잊게 되며 나의 상위자아 즉 나의 영혼이 미리 설계해 둔 계획을 바탕으로 인생길의 방향을 잡아주는 동시에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두 이 지구별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허나 나는 언제나 근원인 하나로써 사랑으로 존재함은 변치 않는 사실이며 육체는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질적인 형상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빛으로 형상화되는 실재 없는 무형의 실체인 것을.


이로 우리들의 죽음은 나의 의해 사전에 협의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로 운명이란 말이 나왔던 것인가. 이로 우연 없다는 말이 나왔던 것인가. 인생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사건들은 인간이 된 내가 근원의 방향으로 성장하고 배우기 위해 설정해 놓은 것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예상치 못한 사고들 그리고 인간의 잣대론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하고 잔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 이를 위해 짜인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며 내가 이로 무엇을 배우고자 함인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옮고 그름을 내 삶의 방향의 나침반으로 내세우고 사람들과의 예의를 중시하며 살아갔다. 늘 평가하고 경쟁하여 세상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세상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저 아인 저렇게 아파야 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가난해야 하며 누군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고 누군 정의를 위해 희생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며 왜 병에 시달리다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데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지 궁금했다.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왜 갑자스럽게 죽는 것인지. '신이 있다면 신은 분명 우리를 버린 것이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입에서 억울함에 쏟아지는 말이었다. 그러하여 까닭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억울해할 필요도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그저 수용하면 그뿐이었다. 그것에 어떠한 판단도 인간으로서의 그릇된 평가를 댈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참으로 애석하게도 우리들이 이 생에 태어나기 전 미리 설계한 그림이었다.

우리들은 나에게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나와 함께한 시절인연들과 배움의 성장을 주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완벽하게 운명론적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인생그림은 전체적인 대략만을 그려놓았을 뿐 그 안에 내용들은 인간이 된 나의 자유의지로 채워지기에 목표로 가기 위한 그 안에 수많은 사건들과 만나게 될 인연들은 내가 창조해 가는 이 현실에서 수시로 바뀌게 된다. 결국 나의 인생은 내가 바꿀 수 있고 나로 바뀐다는 것이다. 나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큰 밑그림 안에서 목표지점은 바뀌지 아니 하지만 그 배움을 어디서 할 건지 누구와 할 건지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는 지금 현에서 내가 만들어 간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그러니 죽음도 그 설계의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 죽음이 떠난 이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남겨진 누군가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엔 모든 삶의 과정은 완전한 참나가 무지로 모든 것을 망각한 상태에서 자신을 재창조하기 위한 성장과 배움을 위한 영혼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세상을 원망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나를 원망하고 모두를 원망했다. 떠난 이를 위해 함께 죽음을 생각했다. 남겨진 나의 세상의 허망함에 함께 죽음을 생각했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특히 병으로 혼을 잃어가는 눈빛으로 살길 갈구했던 사랑하는 이의 죽음,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참으로 우리를 지옥으로 빠뜨려버렸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과거에 했던 행동과 말들의 후회스러움,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서글픈 아쉬움들로 나로 살지 못하였고 어둠으로 엉겨 붙은 바르지 못한 슬픔은 나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죽음이 짓눌리는 무거운 것이 아님을 알리기에 죽음은 그저 한낮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떠난 이를 위해 나의 깊은 그리움을 위해 충분히 슬퍼하고 울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합의하에 이뤄진 일들이었기에 어떠한 물질계의 생각들도 덧붙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봄에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떠난 이의 죽음을 축복해 주길 바란다. 그들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축복, 이 생에서 이루고 싶던 그 모든 것을 얻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생에 최고의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해 주길 바란다.

우리에게 죽음이 새로운 시작임을 알 때 떠난 이를 걱정하지 않으리

우리에게 죽음이 새로운 시작임을 알 때 떠난 이를 붙잡고 있는 나의 마음을 놓아줄 수 있으리

우리에게 죽음이 새로운 시작임을 알 때 이 생에서의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하리.


사랑하는 이를 안타깝게 잃은 모든 이들에게 말하노니

억울해마라.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계획이며 이로 삶을 배우고 성장하기 위함이니

억울해마라. 우리의 인생의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한 내가 만든 나침반이니

그대의 아픔은 그대 아닌 그 누구도 헤어릴 수 없으나

그대가 나이며 내가 그대이기에 나는 그대를 헤아린다.

매년 찾아오는 화창한 봄날이 언제나 다시 시작하듯이

우리 모두 언제나 근본의 나, 근원의 나로 되돌아가 시작한다.

나는 또다시 나의 선택들로 채워진 아름다운 나의 생을 그대의 생을 우리들의 생을 살아간다.

한낮 꿈에 불과한 나의 인생, 이로 참 아쉽지만 멋졌노라 말하리.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아픔은 영원하다

죽음의 감정은 참으로 신기했다.

빗물이 되어 땅에 떨어져 점점 더 깊이 내려간 애달픔은 어느새 냇물로 합쳐지고 강물이 되더니 더없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더라. 그리고 바다가 되었다.

맨 처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매우 얇았다. 아니 전혀 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이를 인지할 수 없었다. 온몸이 그 사실을 거부했고 내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 죽음은 숨 쉬는 공기마저 감염시켜 버렸고 나는 그곳에 잠겨버렸다. 처연한 슬픔만이 감도는 그곳에서. 그렇게 땅속 깊숙이 끝없는 추락만을 지속하는 듯하더니 어느덧 빗물이 되어 세상으로 세상 밖으로 흘러나아 갔다. 그렇게 흘러 어느새 바다에 다다랐고 끝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그 바다 위에서 떠오른 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닷속 오랜 주인이 고래에게서부터 깊은숨을 내쉬고 새로이 숨을 들이마시는 법을 배우며 천천히 바다로 흡수된 나는 세상을 품고 있었다.


떠나간 이로 인해 여전히 아프고 슬프다. 언제나 급작스럽게 마음은 짠 눈물을 쏟아내며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인간의 시간이 치유해 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 아픔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아픔은 치유가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사랑으로 얻어진 아픔이었기에 그 근원으로 근원으로 들어갈수록 그곳엔 크나큰 사랑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더 그 농도는 진해져 가며 사라질 수 없음을 깨닫는 다. 사랑의 큰 자리였기에. 이 슬픔은 내가 이 생을 끝낼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엔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 아픔은 인간의 말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우리의 근원인 사랑에서 삶으로 인해 파생된 보석이었다. 맑고 순수한 사랑이 아닌 더해지고 덧칠해지고 섞여버린 모든 것을 품은 바다와 같이 전체를 품은 사랑으로 진화한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아픔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보석은 점점 더 나를 더욱 성장시켜 주었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육체적인 자아의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바른 슬픔은 보게 하고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진정한 내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아픔을 거부하지 마라.

이 아픔을 충분히 수용하라.

이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럼에 하나인 나로 전체를 향해 걸어가리.



지구별에서의 삶이 홀로그램이며 내가 각색한 연극이며 아무리 신이 체험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놀이터 이더라도 내가 사는 이 삶은 나에겐 거짓일 수 없고 경험으로 얻은 모든 감정들과 느낌 그리고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 이 생에서 함께한 모든 사람 그리고 이생에 얻게 된 모든 사랑... 그것은 모두 나에겐 진짜임에 틀림없다. 인간인 나를 온전히 경험하러 온 신인 나, 죽음에 충분히 슬퍼하고 죽음에 충분히 애달파하라. 그러려고 이곳에 온 것이니. 하지만 그뿐이다. 죽음의 원뜻을 이해하고 앎에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며 그 떠난이가 나에게 무엇을 남기고 간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 죽음은 분명 나를 어느 한 곳으로 이끌 것이다. 나를 위한 그대를 위한 사랑을 기반을 둔 삶의 방향으로. 그리움의 슬픔으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도 답답하다면 그대에게 물어보라.

나에게 물어보라.

나의 영혼에게 물어보라.

나는 그대에게 명확한 길을 보여줄 것이다.






이전 11화판에 박힌 사랑으로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