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의 구조를 건너는 사람

by 태연

사랑은 언제나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형태를 갖는다. 체온처럼, 숨결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일 때, 그를 위해 방 하나를 내어준다. 그 방은 가구를 옮겨 만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늘어나 생겨난다. 그래서 사랑은 확장이다. 마음의 면적이 조용히 늘어나는 일.


아버지가 떠난 뒤, 그 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무엇인가를 들여놓으려 애썼다. 다른 사람의 말, 다른 풍경, 다른 시간. 그러나 그 방은 잠겨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잠겨 있다기보다 이미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라는 이름. 그 이름이 붙은 자리에는 다른 어떤 것도 앉을 수 없었다.


오늘, 15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더 사랑하는 존재들이 따로 있다고. 그래서 덜 아플 것이라고. 그러나 틀렸다. 사랑의 양은 비교할 수 없고, 자리는 각자 고유하다. 두부의 자리는 두부의 체온과 눈빛과 느린 숨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비었다. 정확히 그만큼. 처음 그 비어 있음은 견딜 수 없었다. 텅 빈 방처럼 차갑고, 손이 닿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자리는 그리움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움은 공허가 아니었다. 그 존재가 여전히 나의 감각 안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사라진 것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였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 있던 ‘나’의 한 부분이었다. 누군가를 부르던 목소리, 밤중에 깨어 귀를 기울이던 몸, 돌봄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던 하루. 상실은 누군가의 부재가 아니라, 함께 살던 나의 방식이 무너지는 사건이다. 그래서 슬프다. 너무 정확하게, 너무 깊게.

그래서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던 ‘나’의 시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있을 때만 존재하던 표정, 말투, 감정의 속도, 세계를 바라보던 각도. 이별은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 있던 나의 한 생을 접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느냐고. 그러나 이별의 슬픔은 과한 감정이 아니다. 그건 그만큼 실제로 살았다는 증거다. 관계는 추억이 아니라, 시간 동안 형성된 하나의 생태계였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기억해 내는 방식이다.

그리움은 오래 머물다가, 어느 순간 성질을 바꾼다. 날카롭던 결은 부드러워지고, 비어 있던 자리는 점차 애틋함으로 채워진다. 그 애틋함은 다시 사랑이 된다. 이전보다 더 조용하고, 더 깊고, 더 진실한 사랑으로. 그래서 상실은 마음을 찢기보다, 마음의 지평선을 밀어낸다. 비워진 자리는 공허가 아니라 흔적이 된다. 사랑이 머물렀던 자국. 그 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기능을 갖는다. 더 붙잡지 않게 하고, 더 조급하지 않게 하며, 더 소유하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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