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상이 사라졌다
왜라는 질문의 무게
왜 고통을 느끼고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왜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왜 이렇게 힘든 불필요한 감정들을 느끼는 걸까…
왜, 왜, 왜... 도대체 왜…?
이러한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답이 없는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나를 더욱 깊은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것처럼, 생각이 생각을 낳고 의문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이토록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의 굴레에 얽매여야 하는 걸까?
다른 생명체들은 본능에 따라 단순하게 살아가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복잡한 마음의 미로에서 헤매야 하는 걸까?
감정의 단절
고통에 지배당한 채 헤어나 올 수도, 분리할 수도 없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결심했다.
모든 감정들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그 순간부터 눈에선 생기와 혼이 사라지며 빛을 잃었다.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마치 꺼진 전구처럼 무기력하고 공허했다. 나의 육체는 감각의 살아 있음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투명한 무의 공간에 스스로를 방치한 채,
그저 흘러감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본능에 따른 행동만을 반복하며,
그저 이곳에 있으니,
그저 육체만이 살아갈 뿐이었다.
그저 ...
일상은 기계적으로 반복되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
모든 것이 자동화된 루틴처럼 진행되었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생존의 반복이었다.
절망의 기억
세상과의 이별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외딴 세상에서 믿고 의지했던 사람의 배신은 자꾸만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게 했다.
그 배신의 순간들이 게속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믿었던 만큼 더 깊게 상처받았고, 의지했던 만큼 더 크게 무너졌다.
눈물로 밤을 지내우던 그날들.
잠들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며 보낸 수많은 밤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작은 존재들이 있었다.
가도 와서 몸을 부비대며 걱정스럽게 쳐다 봐주는 우리 멍멍이들을 보며 근근이 버텨가고 있었다.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작은 생명들이 오히려 나를 떠내려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나는 무언의 메시지를 읽었다. '괜찮다', '여기 있어', '우리가 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따뜻한 체온과 촉촉한 눈망울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명력의 순간
무겁게 몸을 일으켜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었다.
바스락 거리는 그릇 치는 소리와 와그작 촵촵거리는 사료 씹는 소리가 적막한 집안의 에너지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한 일상의 리듬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는 몰랐다.
그날따라 유난히 간절히도 온기가 그리웠던 건지 우리 핑키를 아기처럼 안고 둥둥둥거렸다.
작고 따뜻한 몸을 품에 안고 있으니 마치 생명의 온도를 직접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후 들려온 작지만 강한 트림소리.
꺼억!
그 소리가 뭐라고... 그 작은 소리는 아주 강렬하게 나의 온몸을 휘감아 버렸다.
나의 귀안으로 조용히 들어와 나의 심장을 아주 세게 펌프질 했다. 다시금 뛰게 만들었다.
많이 아팠던 아이라 이렇게 살아주는 것이 늘 고마웠었는 데, 작고 여리한 소리에 담긴 깊은 생명력에 덜컥 눈물이 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그리고 그 작은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나를 단단히 동여매었다.
그들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지속할 이유였다.
감각의 죽음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 멍멍이들을 보아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육체의 모든 감각과 연결을 끊은 채,
그땐 난 없었다.
그들의 꼬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내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따뜻한 숨결을 느꼈다. 하지만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정보로만 처리되었다.
감정이라는 필터가 사라진 세상에서 모든 것은 무채색이었다.
아름다움, 사랑, 행복, 감사하는 마음도 다 지워진 세상…
나에겐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의 소거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는 생물학적 활동만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공간을 점유했고, 몸은 기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본질, 감각과 감정, 나와 세상을 잇는 다리들은 희미해졌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무감각은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감각을 감당할 수 없어 잠시 숨을 고른 상태였다는 걸 안다.
세상과 나 사이엔 투명한 막이 생겼고, 그 안에서 나는 모든 자극을 흘려보내며
마치 관찰자처럼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도피가 아니었다.
그건 생존을 넘어선, 내 영혼이 나를 위해 만든 임시 거처였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잠시 사라졌고,
나 자신 안으로 깊이 숨었다.
△
이것이 나의 4번째 이야기다.
감정을 차단했던 시간이 아니라, 감정을 잠시 멈추고 내 영혼이 스스로를 보호하며
조용히 회복해 나가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무감각은 고통이 아니라, 나를 지켜낸 침묵의 선택이었다.
그때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한 게임 속 캐릭터로 들어가 체험하듯 살아가던 나날들.
진짜 나는 그 모든 장면의 뒤편에서 고요히 나를 안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無의 공간은 사라짐이 아니라, 근원으로의 귀환이었다.
거기서 나는
잠시 숨 쉴 수 있었고,
다시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