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자꾸만 올라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었다.
지난날의 행동들에 대한 후회의 고통들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조급함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한 달이 되었으니..."
"이제 세 달이 되었으니..."
시간의 흐름이 마치 치유사인 마냥,
"정신 차려야지" 등의 염려의 목소리들이 나를 더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 이런 아픔을 느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이상한 건가? 잘못된 건가?…’
고통에도 시간표가 있는데, 왜 아무도 그걸 모르는 걸까.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 같은 환상 속에 갇힌 채,
똑같은 깊이의 감정을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새벽녘 안개로 발끝만 겨우 보이는 날에, 분간되지 않는 가파른 언덕아래에 서서 외로움과 손을 잡고 있었다.
혼자였다. 너무나 혼자였다.
부모님의 결별 후 아빠와 나는 단둘이서 10여 년을 같이 살았다. 그리고 30살이 되던 해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억지스러운 후회들이 나를 병들게 했다.
‘만약 서울로 가지 않았다면 아빤 아직도 살아 있을 텐데….’ ,
‘아빠가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그 아줌마 상관없이 늘 했던 대로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 선택을 함께 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아빠 병원에 있을 때 직접 밥을 해서 먹일 걸… ‘
온 마음으로 아빠를 보살폈지만, 이런 생각들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 섰다.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내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싶다는 욕망이
내 두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 고통만 사라진다면...'
'이 무거움만 없어진다면...'
나를 찾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몸을 찢는 고통을 느끼기 위한 학대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 어디에서든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 어느 곳에서든, 그 누구에게도 덜어낼 수 없었다.
세상은 내가 빨리 회복되기를 원했지만,
나는 아직 무너지는 중이었다.
인정하고 지켜봐 주며 표출하여 흘려보내야 되는 것을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겁에 질려 멎어버리며
딱딱하게 굳은 채 나가는 길의 모든 통로를 막아버렸다.
감정의 댐은 차오를 데로 차올라 넘쳐흘렀고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통은 나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로
나를 잠식시켰고
나는 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잃어버린 것이 진짜'나'가 아니라는 것을.
무너져야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 완전한 상실 속에서
진짜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