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터에서

우9. 그 빈터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by 태연

삶은
아무런 예고 없이
무심히 손을 뻗어왔다

내가 쌓아 올린 믿음의 성벽은
가볍게 무너졌다.

허물어진 자리,
모든 경계가 사라진 빈터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맨 얼굴을 바라보았다.


믿지 못해도 괜찮다
어리석어도 괜찮다

삶은 늘 가장 완벽한 순간에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고통은 수천 겹의 생각과 감정을 일으켜
내 마음을 거세게 휘돌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닫는 다
움켜쥘 것도, 지킬 것도 없는

텅 빈 마음을.


그 빈 곳에서

미세한 숨결처럼 피어오르는 무념(無念)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러나 모든 것을 품은
참나를 만난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슬픔은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지만,
사실은 조용히 내 마음의 밑바닥을 걷어내어
진짜 나를 꺼내어 주었다.

시련이든, 나의 어리석은 믿음이 불러온 환영이든,
그 무엇도 나를 잘못된 길로 데려갈 수 없었다.

삶은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었다.


길을 잃어도, 주저앉아도, 무너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오히려 올바른 길이라는 신호다

나는 항상 내가 꿈꾸던 곳으로 가고 있다

이제 고통을 손에서 놓아주어라

스스로를 믿어라
삶을 믿어라

판단 없이, 저항 없이,

파도에 몸을 실듯 순리를 따라 흘러가라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나를 놓아주고,
그저 고요하게

바다처럼 부드럽게
삶 위에 나를 적셔라.


그 빈터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모든 무너짐은, 다시 피어나기 위한 숨이다.

이 시는 내가 스스로를 무너뜨린 뒤, 비로소 나를 만났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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