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난 토요일에 한국고아사랑협회에서 주최한 ‘자립준비청년 박람회, move on’에 다녀왔다. 주관사 중 하나인 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USA 스티븐 모리슨 대표의 환영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고아가 되고, 바로 미국으로 입양을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인공위성 연구개발 일을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생겼고, 고아를 돕고자 미국 한인사회에서 입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단체는 미주 한국입양홍보회 (MPAK-USA)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분, 힘든 거 알아요. 나를 버린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도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과거를 털고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앞을 보고 걸어 나오길 바랍니다. 당신의 미래는 과거와 다릅니다. 당신 곁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자신의 과거를 뛰어넘고 무브온 하세요. 당신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입니다. 힘들 때 말할 곳이 없을 때, 우리에게 기대세요. 우리가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내 옆에 있는 여자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닿아 진심이 통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힘들 때 나에게 기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나는 더 단단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나에게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많은 사람을 도왔지만, 언론에 나오는 것을 극도로 피하셔서 알려지지 않은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장하 선생님은 39살이던 1983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웠다. <명덕신민>이라는 건학이념이 인상적인데 참된 나를 찾아(명덕-明德),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신민-新民)는 뜻이다.
학교를 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힘든 학생들의 장학금을 대주셨고 자신이 운영하는 한약방에 찾아와 돈을 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연유도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가치로 100억 원이 넘는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하셨다.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는 32년 기자 생활을 은퇴하면서 자신처럼 은퇴를 앞둔 선생님을 찾아가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다. 그를 통해 김주하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잔잔하면서 묵직하게 울림을 만나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신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볼 때 내심 ‘돈이 많은 집 아들이겠지, 돈을 어떻게 벌었을까? 왜 저렇게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도와주시는 거지?‘하는 부정적인 의문을 갖고 봤다. 그런데 뜻밖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장하 선생님은 한약방에서 머슴살이하다가” 18살에 국가에서 시행한 한약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한약방을 열어서 생활하셨다. 그를 기억하는 옛 동네 주민은 ‘내가 그때는 김약국보다는 부자였지.’라고 회상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남 사천에 처음 한약방을 열어 다른 약국보다 싸면서도 좋은 약재를 써 효험이 좋은 ‘남성당한약방’으로 소문이 났었다. 하루에 최대 500재까지 지을 정도로 줄을 서서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번 건데,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려 버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돈을 왜 버는 걸까, 잘 먹고 잘 살려고 버는 것도 있겠지만 어른 김장하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 선생님의 선한 마음과 실천으로 많은 꽃과 열매를 맺었듯이 나도 세상에 그런 일을 하다 죽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기다려주고 지켜줄 수 있는 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갖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