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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yimpact Dec 13. 2020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어쩌면 연인의 연인가 봐

1. 첫 번째 연애편지 


안, 녕?

너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데 우리가 오늘 나눈 대화 중 ‘우리가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된 거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머물더라. 너는 나에게 처음 고백할 때의 편지를 담담하게 내밀었어. 고백이 실패한다면, 고백이 입 안에만 머무르고 나오지 않는다면 플랜비로 편지를 줄 생각이었다고. 너의 편지를 읽는데 두 번이나 ‘좋아해요.’라는 문장이 등장했어. 처음엔 그렇구나, 했는데 두 번째는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있었어. 고백을 담은 손편지는 오랜만에 받아본 것 같아.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면서 편지지에 마음을 언어로 쏟아낸다는 게, 그 마음과 시간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졌어.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일어 나의 두뇌를 총동원했어.


이 시가 번뜩 떠오르는 거야. 너의 질문에 대한 답을, 너의 손편지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 말이야.


나의 고독이 너의 고독과 만나
나의 슬픔이 너의 오래된 쓸쓸함과 눈이 맞아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와 손을 잡고
나의 저녁이 너의 저녁과 합해져
너의 욕망이 나의 밤을 뒤흔들고
뜨거움이 차가움을 밀어내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같이 있으면 잠을 못 자 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

연인, 최영미


그렇게 시를 적어서 너에게 보냈어. 너는 내가 써서 보낸 시를 두 번, 세 번 읽고는 ‘연인!’이라고 외쳤지.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를, 다친 마음을 감추지 않았어. 나는 될 대면되라는 식으로 너에게 나를 다 보여줬어. 나도 예전에는 나를 다 보여주기도, 반만 보여주기도 혹은 감추기도 했었던 것 같아.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이라는 관계의 결론 앞에서 남은 것은 나의 태도와 마음이었기에 나는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결심했거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품고서. 그런데 너는, 그저 바라봐주었어.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키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평안해졌어.


사람이 자연이 될 수 있구나. 너라는 자연 앞에 서면 나는 편안하고, 정말 편안한 내 모습 그대로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어.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나무가 되고 싶어 졌어. 꽃처럼 한철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 내 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해내고, 자신의 흐름에 맞춰 성장하고 열매 맺고 추운 겨울을 나는 그런 나무. 그런 나무가 되어 너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싶어.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그저 씨익 웃겠지.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어쩌면 연인의 연인가봐. 어렵고 어떻게해도 안 될 것 같은 사랑의 마음이 이렇게 쉬운 걸 보면. 안녕, 내일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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